[김진홍 칼럼] 김영철과 천안함과 문재인정부 기사의 사진
8년 전의 천안함 폭침 만행 일깨워준 김영철 방남
정부는 양해 바란다는 전화 한 통 유족에게 하지 않아
이달 서해수호의 날 행사와 천안함 추모식 때 대통령 참석해 안보의지 다졌으면


지난주 천안함 폭침의 주범 북한 김영철이 하루 숙박비가 700만원이나 하는 서울의 최고급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다 돌아갔다. 우리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그가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천안함 폭침이라는 북한의 만행을 되새겨볼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그의 방남을 계기로 기억 저편으로 밀려가던 8년 전의 천안함 폭침 사건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씁쓸한 역설이다.

김영철은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이다. 2016년 5월 김정은에 의해 중용됐다. 앞서 2009년 2월부터 인민군 정찰총국장을 지냈다. 당시 군과 당에 분산돼 있던 대남 공작부서들을 하나로 통합해 새로 만들어진 정찰총국의 수장이었던 것이다. 정찰총국장으로 부임한 이듬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을 어뢰로 침몰시켜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8개월여 뒤 연평도 K-9 자주포 진지 등 군사시설과 민간지역을 무차별 폭격했다. 6·25 이후 북한이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공격한 이 사건으로 군인 2명, 그리고 2명의 민간인까지 목숨을 잃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즉각 북한 소행임이 드러난 반면 한밤중 해상에서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5개국 합동조사단이 2개월 동안 조사를 벌인 끝에 북한 짓임이 확인됐다.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이 천안함 격침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됐고, 정찰총국장인 김영철이 주범으로 꼽혔다. 합동조사 결과에 그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건 북한을 직접 조사할 수 없어서였다. 그가 이후 승승장구한 건 무자비한 대남 도발을 자행한 대가였을 것이다.

정부는 김영철 방남을 덜컥 수용하기에 앞서 천안함 유족들의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어 남북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방남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진솔하게 얘기했어야 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자식이나 남편의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하지만 정부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정부가 강조하는 ‘피해자 중심 해결 원칙’은 실종됐다.

나아가 김영철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마저 보였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물론 국가정보원 그리고 군을 지휘하는 국방부까지 5개국 조사보고서를 인용해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조사보고서에 ‘주범 김영철’이 활자화되지 않았다고 그가 주범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조사 결과에 분명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가 주범이 아닌 양 언급하는 게 온당한가. 천안함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으로 전국의 유족들이 서울에 모여 김영철 방남 반대를 외치며 정부를 성토한 이유들이다.

요사이 온라인상에서 ‘천안함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점도 유감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과학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다’ ‘천안함은 조작 사건이다’ ‘유족들이 집단행동하는데 돈 바라고 이러느냐’ ‘자식을 명예로운 전사자로 만들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등등. 섬뜩한 막말들이다. 천안함 ‘폭침’ 대신 ‘좌초’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본인들 가족이 군 복무 중 북한의 공격으로 죽었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들이라지만 이런 언행은 국민으로서 할 바가 아니다.

오는 23일은 제3회 ‘서해 수호의 날’이다. 천안함 폭침과 제2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되새기며 안보 의지를 다지는 날이다. 지난해 열린 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당시 대선 예비후보들이 대선 일정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어 26일엔 천안함 8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민주당 지도부가 일련의 행사에 참석하길 기대한다. 그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천안함 장병들과 연평도 포격으로 숨진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세월호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구하는 유족들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한반도는 여전히 위기 국면이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국군 장병들을 예우하고, 60여만 국군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 우선이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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