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얼마나 곪았으면 이토록 끝없이 터질까 기사의 사진
묵인·관용으로 얼버무렸던 침묵의 카르텔 드디어 무너지기 시작해
사회 전반에 윤리적 자기반성과 고백운동이 일어나기를…


미국 영화계에서 처음 터진 ‘나도 당했다’는 미투(#MeToo)운동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법조계와 문단, 연예계를 넘어 이제 문화예술계 전반, 종교계, 각급 학교, 정계, 체육계 등 사회각계로 옮겨 붙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미 투’ 운동이 이를 고무 격려하는 외곽 시민단체들의 위드 유(With you)운동과 융합하면서 이런 기세는 한동안 산불처럼 더 확산될 전망이다.

그동안 권력과 억압기제에 의해 자행돼 온 온갖 음란과 부패행위는 폐쇄된 조직의 하위문화 울타리 안에서 친밀성 또는 객기란 허울을 쓰고 때론 당혹스럽고, 때론 좀 불편하지만 묵인 내지 관용으로 얼버무려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오래 묵은 침묵의 카르텔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문단과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상상을 초월한 비정상적인 성 유희들이 폭로되면서 지금 우리사회가 받고 있는 정신적 충격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예술과 학문과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유명 인사들일수록 권세를 남용해 밀실에서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괴물놀이를 자행하고 있었다니, 동시대인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전염병처럼 창궐하기 쉬운 음란과 타락의 속성 때문에 건강한 사회를 깊이 생각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경고의 나팔을 울려왔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 존폐를 논할 때, 혼인빙자간음죄 존폐를 논할 때도 이런 정신적 부패의 누룩을 심각히 고려하라고 힘주어 촉구했다. 또한 변태성욕자들의 권리요구와 퀴어행진 같은 비정상적인 성 욕구를 음으로 양으로 조장하고 있는 편향적인 인권조례나 특히 최근의 개헌논의에 편승해 이를 헌법상 기본권으로까지 격상시키려는 일부 좌편향 단체의 동태에 맞서서 정상사회,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깨어있는 지성들도 지칠 줄 모르게 반대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인간도 동물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어 합리적인 이성능력을 개발해 자유와 그에 상응한 윤리적 책임감에 따른 행동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부끄러움을 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적 품위의 근거가 있다. 각 사람은 고유한 인격성을 향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고, 문화 창조적인 정신적 주체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품격과 고상함이 각 사람에게 기대되는 이유다.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해서 정상궤도를 벗어나 동물적인 저차원으로 추락해 개차반으로 살아가도 좋다는 법은 없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미와 학자가 추구하는 진리와 윤리적 인간이 좇는 선과 종교인이 희구하는 거룩함은 높은 경지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격적인 삶은 결코 부서진 항아리의 파편 조각과 같은 꼴이 될 수 없다.

남들이 아직 가보지 못한 경지에 이른 유명 인사들이 어찌 이토록 쉽게 동물적인 차원으로 추락해 인격의 파탄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육욕은 강하고 이를 통제할 정신적 바탕은 약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경지에서 제1인자가 된다는 건 외롭기 그지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약자에게 성추행도 거리낌없이 가했다면 그건 소인배만도 못한 작태일 것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스스로 모든 것 내려놓고 진작 내려오는 것이 현명하지 않았을까? 명목상의 상층부가 저리도 썩었으니 사회 구석구석에 악이 기승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 아닌가. 일찍이 칸트가 일러준 말이 새삼스러워진다. “너는 자신의 인격에서건 타인의 인격에서건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고,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라.” 자신의 육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인격을 가볍게 일방적인 수단으로 대하는 것은 꼭지가 덜떨어진 인간이거나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가 아닐까 싶다.

사실 미투 운동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두드러진 사회현상 중 하나는 범죄피해자들의 집단화현상이다.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힘은 다수의 집결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범죄피해자들은 도처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세력화하기 위해 집단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군의 집단세력화가 자기 성찰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조정될 역량을 잃어버리게 될 때, 때론 법을 통한 이성적인 문제해결과 사회발전에 역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원하기는 고발운동이나 법 이전에 사회 전반에 걸쳐 윤리적인 자기반성과 고백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자발적인 화해와 용서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으면 좋겠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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