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보구여관’ 이대의료원 기사의 사진
서울 이대목동병원이 지난해 12월 중순 감염관리 부실로 신생아 4명이 숨진 사실로 지금도 수사를 받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취소 문제까지 거론된다. 흔히 이대목동병원으로 불리는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은 일반 종합병원이 갖는 의미를 뛰어 넘는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늘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했던 ‘민중병원’이었기 때문이다. 봉건적 폐습으로 여성이 의료혜택 받기가 쉽지 않았던 구한말 설립된 최초의 여성병원이었고 따라서 개원 자체가 한국 여성인권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대의료원은 1887년 미국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서울 정동에서 시작된 ‘부인병원’이었다. 고종은 근대식 병원 개원을 뜻 깊게 여기고 ‘보구여관(普救女館)’이라 명명한다. 서울 애오개, 동대문 등에 분원이 있었다.

이 병원은 18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여자의대 출신 로제타 홀(1865∼1951)이 원장으로 부임 후 사회적 약자와 여성 전문 치료 및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제타가 의료선교를 겸하며 길러낸 이들이 우리나라 첫 여의사 박에스더 등 여성 의료인력 5명이었다. 이화여대 의대 첫 졸업생이다. 로제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남녀를 떠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로제타의 의사 남편 윌리엄 홀과 대를 이은 의사 아들, 며느리도 함께 한국에서 의술을 펼쳤다. 로제타 일기 몇 대목.

‘하지 마비 욕창으로 대퇴골두가 드러난 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일종의 혼수상태였다.’ ‘종양이 있는 네 살 아이. 부모는 전통 진료 방식의 지시에 따라 아이의 배설물을 종양에 발랐다고 한다.’ ‘화상 입은 소녀. 병원 입원을 권고했으나 그 집 남자들이 내 권고를 듣지 않았다. 아이가 낯선 곳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한 소녀 가족이 데려가 버렸다.’ ‘우리 여학교에서 소녀들의 눈과 혀로 약을 만들고 있다고 소문이 났고 이로 인해 폭동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 로제타와 의료진은 흉흉한 민심 가운데서도 빈부를 막론하고 의술을 베푼다. ‘많은 양의 과일과 한국 음식들 그리고 1000개가 넘는 달걀’ 등이 진료비였다. 노비의 아들을 치료했더니 몸을 팔아서라도 보답하고 싶다고 그 어머니가 조아리기도 했다.

이대의료원은 2019년 대규모 병상의 이대서울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다. 섬김과 나눔이란 첫 마음을 잃고 세상적 방식의 셈법으로 병원 경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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