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안희정의 경우 기사의 사진
사회적 약자들 권익 옹호해 온 안 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은 충격적
성폭력 근절하는 내실있는 대책 만들고 인권 차원에서 젠더 교육 일상화해야 재발 줄일 수 있어


처음엔 잘못들은 줄 알았다. “설마”하며 TV 뉴스의 자막을 보는 순간 멍했다. ‘안희정 지사 성폭력 폭로’라는 문구가 화면 왼쪽 위에 선명했다. 안 지사의 비서인 피해자 김지은씨의 이어진 고백은 더 충격적이었다.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포괄하는 의미의 성폭력 가운데 안 지사가 저지른 것은 성폭행, 그것도 상습적 간음 또는 강간이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에서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휴대전화 메신저가 잇따라 울렸다. 지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극한 언사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진보붕괴의 음모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안희정이 누군가.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 ‘시대교체’를 내걸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이미지로 경선 2위를 차지해 문재인 후보를 위협했던 새 정치의 아이콘이었다.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한순간의 실수라고 할 수 없는 중범죄를 저질러 30년 정치인생을 오욕으로 마무리하고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안 지사는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여느 정치인보다 중요하게 역설했었다는 점에서 배신감은 더 컸다. 사실이 드러난 후의 행태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그는 김씨가 전모를 밝힌 지 4시간 정도 지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도지사를 그만두고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털어놓지 않았으며 정계은퇴나 처벌감수 같은 당연한 수순조차 말하지 않았다. 비난 여론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꼼수 사과로 읽혔다.

전도유망한 정치인이 추악한 잘못을 저지른 이유를 잘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안 지사의 처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짐작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우선 수행비서를 동성이 아닌 이성으로 들였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수행비서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상사와 늘 붙어있다. 국내 일정과 해외 출장에 빠짐없이 동행한다. 바쁠 때는 윗사람이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보고를 해야 할 만큼 거리낌 없어야 한다. 그래서 직무능력보다는 가까이 두기 편한 사람을 고르고 거의 예외 없이 동성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홍보를 맡던 젊은 여성에게 갑자기 수행 업무를 맡겼다는 배경이 석연치 않다.

6일자 한 조간신문엔 ‘평소 여성과 접촉 많아… 우려가 현실로’라는 제목의 작은 기사가 실렸다. 안 지사가 평소 여성 지지자와의 스킨십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 내심 충남도 관계자들이 걱정했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김씨가 방송에서 밝힌 안 지사의 발언은 권력에 마취된 전형적인 마초 상을 연상시킨다. 김씨는 안 지사가 평소 ‘네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말라’ ‘너는 나의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라’고 했다고 한다. 김씨를 업무상의 공적조직원이 아니라 예속상태의 사적관계 대상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이 위계와 위력에 의한 성범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씨에게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을 걱정하는 말을 내뱉던 당일에도 성폭행을 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안 지사가 가학성애자의 기질을 가진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김씨가 방송에서 밝힌 “다른 피해자가 더 있다”는 내용은 이번 일이 상상불가의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음을 예고했다. 안 지사의 두 얼굴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 상담건수는 10만1028건으로 2009년의 세 배에 달할 만큼 최근 급증했다. 경찰청이 발표한 성폭력 피해 발생 건수는 연간 3만 건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발생이 아니라 경찰이 인지한 수치다. 전문가들이 신고율을 10% 미만으로 보는 현실을 감안하면 성폭력 피해는 연간 30만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성폭력이 일상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투 운동은 폭발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움츠려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어 꾹꾹 눌러왔던 마음속 응어리를 내뱉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면한 과제는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내실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다. 성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에서 한 단계 격상시켜야겠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존엄, 즉 인권의 잣대로 다뤄야 한다. ‘성(性·Gender)’의 참 의미를 민주사회의 핵심가치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일상화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며 그 피해는 결국 온 국민이 안을 수밖에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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