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風에 하늘하늘∼‘변산아씨’의 화사한 무도회 기사의 사진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살포시 피어난 ‘변산아씨’ 네 자매에 벌이 날아들어 꿀을 모으고 있다. 푸른 이끼로 덮인 나무 밑 ‘나 홀로’ 변산바람꽃 옆에는 찬 바람이 싫은 듯 꽃봉오리를 닫고 있는 복수초가 화려한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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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邊山). 전북 부안에서 서해로 불쑥 튀어나온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국립공원이다. 산이지만 바다를 동시에 품고 있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이 땅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내변산(內邊山) 일대에서 25년 전 처음 발견된 한국 토종야생화다. 봄을 찾아 변산반도로 향했다.

변산반도는 1988년 스무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내변산의 뭍과 외변산의 바다가 어우러져 절경 중의 절경을 이룬다. 최고봉 의상봉(508m)이나 관음봉(424m) 등 기암괴석이 가득한 산 쪽에는 직소폭포와 같은 제법 규모가 큰 폭포와 호수가 있고, 바다 쪽엔 굽이굽이 해안을 끼고 절벽이 이어지며 빼어난 경관이 펼쳐진다.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놓인 내변산은 트레킹 코스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진 외변산은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다.

변산을 찾은 여행자들은 대개 해안선만 따라 돈다. 이것만으로는 변산의 진면목을 봤다고 할 수 없다. 하서에서 변산까지 잇는 736번 지방도를 달려보면 ‘변산의 속살’ 내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사를 쏟아낼 것이다. 제각기 방향을 튼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숲을 이루듯 서 있고, 암봉과 암벽들이 장대한 맛을 풍긴다.

이른 봄 내변산에는 아주 작지만 그 무엇보다도 대접받는 특별한 생명이 있다. 가녀린 몸으로 차가운 눈을 뚫고 나와 약한 바람에도 춤을 추듯 하늘거리는 높이 10㎝ 정도의 아주 작은 꽃, ‘변산아씨’라고 불리는 변산바람꽃이다.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식물로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 전국적으로 자생하지만 1993년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발표하면서 ‘변산’이 학명으로 채택됐다. 새로운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되지만 무분별한 채취 및 서식지 훼손으로 인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관심대상(LC)으로 분류됐다.

변산바람꽃은 양지바르고 습기가 적합한 곳에서 자란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에 군락지가 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낙엽 이불 사이로 앙증맞은 꽃송이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매년 2월 15일쯤 고개를 내밀던 변산바람꽃이 올해는 혹한과 많은 눈 때문에 1주일가량 늦게 피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복수초가 찬 바람이 싫은 듯 꽃봉오리를 닫고 있다.

변산아씨를 맞이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 몸을 낮춰야 눈을 맞출 수 있어서다. 무릎을 꿇거나 바짝 엎드리는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다. 꽃잎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하얀 꽃받침과 연녹색 꽃잎이 방긋 웃고 있다. 줄기와 꽃받침이 나오고 꽃받침 안쪽 연한 자색의 수술과 섞인 깔때기 모양의 꽃잎이 은은한 봄 내음을 풍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낸다. 싱그러운 봄날 아씨들이 숲속에서 무도회를 여는 것 같다. 아씨들의 자태에 반했는지 꿀벌도 찾아든다.

변산바람꽃 군락지로 널리 알려진 청림마을은 소의 뾰족한 두 뿔과 닮았다고 붙여진 쇠뿔바위 아래에 있다. 이 마을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진작가를 비롯해 많은 관광객들이 마을 주민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밭둑이나 하천 둑길이 발길에 반질반질한 도로로 변하기 때문이다. 발길에 밟혀서 피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변산바람꽃도 부지기수다.

변산아씨와 헤어진 뒤 또 다른 ‘봄의 전령사’ 노루귀를 만나러 갔다.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을 얻었다. 분홍색, 흰색, 청색 꽃에 꽃받침과 꽃줄기를 수놓은 솜털이 신비롭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직소폭포로 향하는 길가에 갓 피어난 꽃이 찬바람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새끼노루귀’다. 제대로 피지 못한 꽃은 내부의 흰색을 어렴풋이 내비치고 있다. 7∼15㎝의 꽃대에 보송한 솜털이 햇빛에 반짝인다.

노루귀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내소사 청련암 가는 길섶에 복수초(福壽草)와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복수초는 복 받고 오래 살라는 축복의 뜻이 담겨 있는 야생화다. 봄꽃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알려졌다. 한낮에는 노란색 꽃잎이 벌어지고 밤에는 꽃잎이 오므라든다. 봄의 전령사들이 지고 나면 얼레지 산자고 등이 해맑은 모습으로 변산을 물들일 것이다.

변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 봉우리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오션 뷰(바다 전망)’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최고봉 의상봉 일대는 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산행은 주로 내소사와 관음봉, 직소폭포 일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내변산의 비경과 외변산의 서해를 보기 위해서는 관음봉에 오르는 것이 으뜸이다. 정상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면 여러 개의 작은 산이 어깨를 맞대며 변산의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그 안에 많은 폭포와 맑은 계곡이 숨 쉬고 있다.

멀리 직소보가 눈에 들어온다. 봉래구곡의 물을 막아 인공호수를 만들어놓았다. 부안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부안군민의 상수원이었다. 그 사이 골짜기마다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숨어 있다. 우람한 내변산의 암릉들과 잔잔한 물이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정취는 한 폭의 그림이다.

동남쪽으로 곰소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곰소만은 ‘만(灣)’이 아니라 ‘강(江)’처럼 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평야가 펼쳐진 듯 너른 갯벌이 장관이다. 곰소염전은 질 좋은 천일염으로도 유명하다. 인근에 젓갈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모항, 곰소, 줄포가 차례로 이어진다.

■여행메모
736번 지방도 따라 내변산 드라이브… 곰소항 젓갈정식·격포항 회 '군침'

수도권에서 내변산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부안나들목에서 빠져 30번 국도를 이용한다. 신흥교차로에서 좌회전해 하서면 소재지를 지나 736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어수대를 지나면 청림마을이 나오고 이후 중계마을회관에서 좌회전하면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내변산의 한가운데를 달리면 첩첩이 이어진 산세를 만끽할 수 있다.

시원하게 뚫린 새만금방조제를 달리고 싶으면 군산나들목에서 나가는 게 좋다. 방조제를 건너면 바로 30번 국도와 만난다. 내소사탐방지원센터는 줄포나들목에서 나가는 게 가깝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봉래구곡의 물길을 따라 선녀탕과 직소폭포로 이어지는 내변산 트레킹이 인기다. 전망 좋은 관음봉에 오르려면 내소사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좋다.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내변산에는 민박이나 펜션이 많다. 736번 지방도를 따라 곳곳에 민박집들이 있다. 격포나 모항 등 해변과 내소사탐방지원센터 인근에도 민박이 흔하다. 격포항 일대는 횟집들이 많다. 격포 버스터미널 부근 군산식당(063-583-3234)이 알려져 있다. 곰소항에는 '젓갈정식'을 내놓는 집이 즐비하다.

변산반도에는 낙조로 유명한 솔섬, 채석강, 적벽강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격포항 인근 '부안영상테마파크'도 들러보자. 드라마 '왕의 남자', '불멸의 이순신' 등의 촬영지다(내변산탐방지원센터 063-584-7807).

부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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