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허공은 불안한 공간이지만 ‘나’를 찾기 위한 확실한 장소 기사의 사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32년 완성한 작품 ‘오전 4시 궁전’. 자코메티는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자신의 어머니와 당시 그가 만났던 여인 등을 표현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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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거주지 마련에 사활을 걸었다. 거주지는 인류의 정체성이었다. 자신이 사는 집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집이라는 공간에 안주한다. 고대 이집트의 왕들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특별한 용어로 불렀다. 고대 이집트 통치자인 파라오는 기원전 3100년 도시와 문자를 만들었고, 자신을 지상의 존재가 아닌 매일 아침 어둠 속에서 부활해 세상을 지배하는 ‘태양’이라고 여겼다.

이집트인은 동물을 통해 힘을 표현하였다. 저 멀리 하늘을 가로지르며 비행하다가 자신의 먹잇감이 있으면 한순간에 내려와 낚아채는 송골매는 태양과 유사하다고 여겼다. 송골매는 고대 이집트어로 ‘호루스’다. 호루스의 의미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인간들을 항상 보살피는 자’란 뜻이다. 고대 이집트 왕들은 자신을 다른 인간들을 살펴보는 호루스로 여겼다.

이집트 통치자들은 자신들을 신의 대리자로 여기기도 했다. 이집트 신왕국시대에 유일신 종교개혁을 단행했다가 실패한 왕이 있다. 그 유명한 아크나톤이다. 아크나톤은 자신을 새로운 명칭으로 부르도록 했는데, 바로 ‘파라오’다. ‘파라오’는 이집트어로 ‘집’을 의미하는 ‘파르’와 ‘크다’를 의미하는 ‘오’의 합성어다. ‘큰 집’이란 의미다. 아크나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파라오, 모든 생명, 풍요, 그리고 건강.” 이집트 통치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인 ‘궁전’ 즉 ‘파라오’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인은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신전을 부를 때 특별한 용어를 사용했다. 바로 수메르어 ‘에갈’이다. ‘에갈’은 ‘파라오’와 그 의미가 같다. ‘에갈’은 ‘집’을 의미하는 ‘에’와 ‘크다’를 의미하는 ‘갈’의 합성어로 ‘큰 집’이란 뜻이다. 신이나 왕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큰 집’에 거주하는 존재다. ‘에갈’은 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기원전 10세기 이제 막 왕국을 시작하려는 조그만 나라 이스라엘에 영향을 주었다. 다윗이 짓기 시작하고 솔로몬이 완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부르는 특별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수메르어 ‘에갈’을 음차한 ‘헤이칼’이었다. 고대 히브리어에서 ‘헤이칼’은 ‘성전’이란 의미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30년대 초,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모색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오전 4시 궁전’이라는 작품이다.

자코메티가 1932년 완성한 ‘오전 4시 궁전’의 프랑스어 제목은 ‘Palais de Quatres Heures’이다. 이것은 ‘오전 4시의 궁전’, 혹은 ‘네 시간의 궁전’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건드리면 금방 망가질 것 같은 건축 구조물이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나무판자 위에 가느다란 나무들이 꽂혀 있다. 이들 나무는 실로 엮여 있다. 전체가 훤하게 뚫린 구조물이다.

구조물 오른편에는 투명한 새장이 있다. 새장엔 이집트의 호루스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불사조 피닉스 같은 새가 들어 있다. 왼편에는 사제를 연상시키는 여인이 세 개의 널빤지 앞에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서 있다.

우리가 이 조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자코메티가 이 작품에 대해 두 개의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은 간접적이다. 그는 1933년 초에 ‘불에 탄 풀’이란 시를 써 초현실주의 잡지인 ‘혁명을 위한 초현실주의’에 게재했다.

두 번째 글은 같은 해 12월 ‘미노타우로스’라는 잡지에 발표한 ‘나는 나의 조각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할 뿐이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두 번째 글에서 자코메티는 ‘오전 4시 궁전’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층심리학을 이용해 덤덤하게 서술했다. 위대한 조각가가 어떤 생각을 표현했는지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조각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할 뿐이다. 이 작품은 1932년 여름에 조금씩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가을까지 이 작품은 ‘실재의 의미’를 획득하였다. 그 후 내가 공간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창작하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내 삶의 특정한 시기와 연관돼 있다. 내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마술적으로 변화시킨 한 여인과 지낸 시기다. 우리는 밤에 환상적인 궁전을 만들었다. 낮과 밤은 동일한 색이다. 모든 것은 동틀 무렵 전에 일어났다. 성냥개비로 지은 궁전. 약간만 건드려도 전체가 무너질 것만 같다. 우리는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 자코메티는 자신이 처한 불안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여기에 등장한 여인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 6개월간 교제했던 ‘드니스’라는 여인이다. 자코메티는 그 여인과 동거하면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품의 오른편에 있는 척추 형태의 장치가 바로 드니스다. 그 척추 뼈 위에 새가 있는데, 이 새는 새벽 4시를 알리는 울음소리를 낸다. 베드로가 들은 닭 울음소리다.

왼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인은 자코메티의 어머니 아네타다. 자코메티에게 어머니는 강직하지만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였다. 동시에 아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여인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젠 자신을 보지 않고 세 개의 널빤지만 응시한다. 자신보다 큰 널빤지가 세 개나 있어 무엇을 봐야할지 혼돈스러운 모습이다. 자코메티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려는 심리를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오른편 척추가 상징하는 길거리 여인이 어머니를 대치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여인과의 세속적이며 부질없는 경험을 통해, 자코메티는 이제 힘겹지만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홀로 비행해야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 가운데에 등장한 물건은 자코메티를 가리킨다. 조그만 널빤지에 있는 작은 공,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이 공은 불안하게 매달려 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는 자코메티 작업실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탕기는 1929년에 ‘4시 여름, 희망’이란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신비한 꿈을 묘사한다. 그림의 중간엔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다. 오른편에는 자코메티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희미하게 처리돼 있다.

자코메티의 작품 ‘오전 4시 궁전’은 탕기 그림의 제목인 ‘4시 여름, 희망’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탕기는 이 그림에서 ‘희망’을 전한다. 자코메티는 ‘불에 탄 풀’이란 시에서 절망의 순간에서도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적었다.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오전 4시 궁전’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살아있다. 이 아름다운 궁전, 궁전의 기둥들, 뻥 뚫린 천정에서 웃고 있는 공기…. 나는 천천히 허공을 잡으려고 애쓴다. 허공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기적의 하얀 실을 통해 스스로 움직인다. 허공으로부터 현실과 꿈이 도망친다. 오, 궁전이여, 궁전이여!”

자코메티는 불에 바짝 타버려 남은 것이 없는 자신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검은 숲과 파란 풀이 공존할 순 없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야한다. 자코메티는 이 시에서 어머니를 언급한다. “바느질과 주사위를 던지는 빛나는 놀이들은 서로를 발전시키고 성공하게 만들었다.” 이 구절엔 자코메티와 동생들이 주사위 놀이는 하는 동안 그 옆에서 쉴 새 없이 뜨개질을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녹아 있다.

자코메티는 스스로를 ‘한 방울의 피’라고 표현했다. 피는 생명의 시작이다. 허공은 불안한 공간이지만,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가장 확실한 장소다. 그것은 자코메티의 공간이다. 그는 이 공간에서 구원의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자코메티는 ‘오전 4시 궁전’에서 자신을 후원한 어머니와 쾌락을 위해 만난 여인 사이에서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는 이제야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들었던 베드로처럼 보혈을 흘릴 준비를 마쳤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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