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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독자에 대한 경의가 담겨야 좋은 글”

‘부탁이니까 내 얘기 들어주세요’ 간청의 언어가 바깥을 향한 언어

[책과 길] “독자에 대한 경의가 담겨야 좋은 글” 기사의 사진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우치다 다쓰루 지음/김경원 옮김/원더박스/320쪽/1만5000원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1강까지는 읽어주기 바랍니다. 제1강을 읽었는데도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책꽂이에 다시 꽂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주인공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불문학자인 우치다 다쓰루(68)다. 저렇듯 간청까지 하는 걸 보면 제법 자신감 있게 내놓은 저작인 듯한데, 실제로 읽어보니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쉬우면서도 강렬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글쓰기와 관련된 다쓰루의 창작론이다. 그는 21년간 몸담은 대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학기에 ‘창조적 글쓰기’라는 제목의 강의를 개설했는데, ‘어떤 글이…’는 이 강의 내용을 담은 신간이다.

저자는 첫 강의에서 이런 숙제를 낸다. “내가 이제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덜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이야기를 써오세요. 채점 기준은 ‘설명하는 힘’입니다.”

얼마간 엉뚱한 주제처럼 여겨지는데, 이 같은 제목을 던진 건 “입시 전문학원 등에서 한 번도 작문 과제로 낸 적이 없는 주제”일 거라고 판단해서다. 그 다음 강의에서 그는 채점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생들의 글이 “재미가 없었다”고 혹평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그것은 “독자에 대한 경의”가 담긴 글이다. 경의의 태도란 어떤 것인가.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수신자의 소매에 매달려 ‘부탁이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하는 간청의 언어만이 ‘바깥을 향한 언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정확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다는 필사적인 마음이 언어를 움직입니다. 뜻하지도 않은 곳까지 언어가 닿도록 합니다.”

진부한 내용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나면 이토록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얼마나 허투루 여기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저자의 목소리에 “독자에 대한 경의”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학문이란 무엇이며 소통의 통로는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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