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통일희년 선포 30주년에 훈풍이 일다 기사의 사진
남북이 해방과 복권의 ‘기쁨의 해(禧年)’를 함께 맞이하자는 선언은 통일 그 이상을 추구하자는 것
시장이 神처럼 군림하는 세상이라도 빚을 탕감하고 갇힌 자를 풀어주는 일은 매우 절실한 가치실현


봄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도 드디어 훈풍이 분다.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펼쳐진 남북의 대화 모드가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화해 구도를 구체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의 한반도에 도둑처럼 봄이 왔다.

강추위가 봄기운에 밀려나듯 한반도를 짓눌러온 전쟁 공포가 평화를 바라는 염원 앞에 녹아내린다. 한반도의 평화 염원은 남북 분단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었다. 특히 1988년 2월 29일 한국 교계가 선포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다.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가 지난 5∼7일 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에서 올라브 퓍세 트베이트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는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해 긍정적이고 성경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고 88선언을 평가했다. 88선언의 핵심은 분단 50년째인 95년을 ‘통일희년’으로 선포한 데 있다.

희년(禧年·jubilee)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그 이듬해, 즉 50년째 되는 해다. 그때가 되면 조상 대대로 받은 땅을 빼앗긴 사람은 땅을 되돌려 받고, 빚을 못 갚아 노예가 된 이들은 풀려난다(레위기 25:8∼34). 한마디로 희년은 해방과 복권을 뜻하는 ‘기쁨의 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8일 50주년을 맞는 국가조찬기도회 연설에서 희년을 얘기했다. “희년은 죄인과 노예, 빚진 사람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방과 안식의 해…. 약자는 속박으로부터, 강자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경계와 벽을 허무는 포용과 화합의 정신이 희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희년은 구약시대의 룰이었고, 오늘날 시장이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5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빚을 탕감해 주거나 갇힌 자를 풀어주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 정신과 지향성은 의미가 매우 크다. 내가 이메일 ID로 ‘jubilee’를 쓰는 것도 그 지침과 뜻을 기억하자는 데 있다.

문제는 통일희년 선포 이후에 드러났다. 우선 1995년을 통일희년으로 선포했지만 실현되지 못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통일희년은 일회적인 이슈로 지나가고 말았다. 시대와 역사적 상황이 달라진 지금 50년이란 숫자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지만 교계는 희년을 기계적으로만 헤아리는 듯했다.

희년이 50년째라는 숫자적인 의미보다 해방과 복권으로 이해될 때 비로소 88선언은 살아 있는 역사가 된다. 평창올림픽 때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불만을 표시했던 까닭도 그와 관련이 있다. 통일 그 자체보다 과정이 중요하며, 특히 통일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점을 그들이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로 배타성의 문제다. 해방과 복권의 혜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통일희년 선포 30주년을 맞아 곱씹게 되는 것은 통일보다 희년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이 막혔던 담을 헐고 완벽한 화해에 이르자면 수많은 굴곡과 어려움에 직면할 터다. 그 과정을 극복하고 준비하는 데 가장 절실한 게 바로 희년정신이다.

한반도에 지금 꽃바람이 부는 듯 보이지만 낙관은 조금 성급하다. 당장 북한의 본심도 더 따져봐야 한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고 실제로 북한 당국은 북한 내부를 향해 공식적으로 ‘비핵화’에 대해 거론하지도 않았다. 대화는 이제 겨우 시작이고 남북이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가 챙겨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 내부에 해방과 복권은 구현되고 있는지, 배타적인 관행과 행보는 없는지를 꼼꼼히 점검해야 할 때다. 빈부격차가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만연된 상황에서 지역·이념·세대로 다시 나뉘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과 남녀 간 대립까지 일상다반사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요즘 남북문제 이상으로 관심이 쏠리는 ‘미투(나도 당했다)’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하지 않는 일방적인 태도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나만을 위한 행복한 세상은 매우 오만한 도피일 뿐, 그 의미는 정계나 시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부의 신중한 대응은 물론 우리 모두가 통일희년 실현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사실 우리 내부에서 희년정신이 외면되고 남남갈등이 증폭되고 있는데 언감생심 한반도의 통일이 가당키나 하겠나. 통일희년 선포 30주년에 불어오는 훈풍을 꼭 살려가자.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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