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남중]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사의 사진
봄바람이 분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있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올봄은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진다. 이 봄은 계절적 봄만이 아니다. 사회적 해빙이라고 할까.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냉각시켰던 여러 문제들이 함께 풀어질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봄바람에 실려 오고 있다.

우선 남북관계에 봄이 오고 있다. 4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5월에는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걱정하던 처지에서 보자면 최근 한 달여간의 사태 전개는 너무 극적이라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미국이 대화에 나설 리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 한국이 북·미관계에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혼돈에 빠졌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전쟁이 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상대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 가능성이 낮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변화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동계올림픽이라는 기회는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정부는 그 작은 가능성을 붙잡고 과감하고 성실한 대화를 전개한 결과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냈다.

여성들에게도 봄이 오고 있다. 성폭력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위드유(#WithYou)’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남성 중심 사회가 불태워지는 모습을 우리는 최근 지켜보고 있다.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TV에 나와 성추행 사실을 고백했을 때만 해도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라는 걸 알아채긴 어려웠다. 고발은 논란으로 변질되고 다른 이슈들에 묻히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는 퇴출되고 가해자는 살아남는, 그런 익숙한 결과를 예상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여성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시민들의 지지가 결합되면서 ‘촛불혁명 2탄’이라고 불릴 만큼 거대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소 비관적인 목소리로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거나 “그런다고 달라지겠어?” 또는 “누군 바보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혼자 잘난 척하지 마라” “나서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낙관적인 사람들은 좀 다르다. 세상이 변한다고 믿는다. 한 번에 확 변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분명히 변해간다고 믿는다. 그들은 작은 변화나 진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다. 현재의 미투 운동을 두고 비관적인 전망과 희망 섞인 낙관이 교차한다. 정치적 의도가 끼어들거나 폭로의 진실성이 시빗거리가 되면서 결국 변질되고 말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문화혁명’이라거나 ‘여성들의 민주화운동’으로 바라보면서 한국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비가역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급격한 태도 변화를 ‘기만술’이나 ‘쇼’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며 냉전적 시각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경의선을 타고 북한에 가는 통일시대를 상상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쪽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인가. 어쩌면 우리가 맞이할 현실은 결정돼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변화를 믿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면 세상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낙관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2년 전 광화문 광장의 촛불혁명도 그랬다.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켜는 일로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다고 당시에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한국 사회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 봄바람이 여성들의 봄, 남북관계의 봄은 물론 청년들의 봄, 집 없는 이들의 봄,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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