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윤명] 그런 욕망과 관행은 없다 기사의 사진
3월 초 대학 캠퍼스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하다. 강추위의 기억도 어느새 사라지고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무거운 돌덩이가 자리잡고 있다. 젊은 친구들과 세상의 기쁨과 희망을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지만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악랄함과 비열함, 파렴치함이 건재하다면 어찌해야 할까. 성범죄를 저지른 소위 유명 인사들이 수십년간 리더로, 권력으로 ‘윤택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비록 소수이겠으나 문화계, 교육계, 종교계, 정치권까지 성범죄자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가해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가고 피해자들이 도망을 가거나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면 도대체 우린 뭘 하고 있는 걸까.

상황이야 다양하겠지만 성범죄는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모욕이며 인격살인이다. 피해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파괴되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억울함과 분노를 표현해도 수용하고 돌봐주기는커녕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게 현실이다. 한 피해자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을 10여년이 지난 뒤에 고소하고 또 몇 년이 지난 뒤 가해자에게 1심에서 10년형 선고를 받게 한 일이 있다(이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세월 동안 피해자는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가해자 중에 일부는 침묵으로, 일부는 거짓 사과로 공분을 사고 있다. 욕망과 관행이었다는 변명도 있었다. 욕망이었다고? 그건 욕망이 아니다. 관행이었다고? 그런 관행은 없다. 비열한 폭력이고 악랄한 권력이었을 뿐이다. 평생을 슬픔, 분노, 외로움, 상실감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치유하며 희망의 빛을 갖게 할 수 있을까.

먼저 가해자들을 분명하게 처벌하도록 사법 당국의 분발을 촉구한다.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성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범죄자들은 지위나 연령을 불문하고 형사처벌 받도록 해야 한다. 처벌은 법에 따라야 하지만 적당한 반성 등의 이유를 달아 형이 경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적폐청산이 최소한의 정의 실현이라면 무엇보다도 성범죄자들의 비열한 행위야말로 청산되어야 한다. 이번 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지부지된다면 국어사전에서 ‘정의’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성범죄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권위주의적 문화, 침묵과 방관의 문화는 어찌 해야 할까.

미투 운동은 침묵과 방관의 문화가 무너져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냉대와 두려움 속에서 폭로를 감행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직과 공감의 문화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문화계, 정치권, 대학가의 일각이 무너진 자리에 우리의 천박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간적 각성과 시민적 참여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무엇보다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피해자가 2차, 3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가족의 보살핌과 사회의 지원 등이 피해자들이 희망하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동주 시인이 그리워진다.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고 노래했다. 부끄럼조차 없는 우리가 아닐까. 부끄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희미하나마 구원의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나의 부끄럼을 인정하듯 타인의 부끄럼을 용서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인간에 대한 파괴적인 모독과 모욕은 신조차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감옥 체험과 함께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참회와 반성 속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는 건 자기 자신일 뿐이고 진정한 확인을 위해선 신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피해자들이 새로운 삶의 빛을 스스로 만들어내길, 그리고 우리 모두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에 공감하고 참여하길 바란다.

박윤명 서울교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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