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모든 공문서에 종교 기입 의무화

실제와 다르게 적으면 반역죄, 공무원에겐 신앙 선서 강제… 소수종교 차별·탄압 우려 커져

파키스탄, 모든 공문서에 종교 기입 의무화 기사의 사진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남부의 대도시인 카라치에서 ‘신성모독법’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이 지난 9일(현지시간) 모든 공적 서류에 종교 기입을 강제하고 실제와 다른 종교를 적을 경우 반역죄나 헌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파키스탄 현지 언론 ‘여명(Dawn)’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는 공식적인 문서나 자격증 등에 실제 종교와 다르게 기재하는 행위를 엄벌하고 상위 계층이 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신앙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조치는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명백히 구분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10월 선거법을 개정,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의 마지막 예언자임을 선서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테리크-에-라바이크 야 라술 알라(TLYRAP) 등 강경 이슬람단체 회원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서면서 재개정됐다. 이번 판결은 TLYRAP가 정부에 요청한 진상조사 결과로 나왔다.

상고 없이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앞으로 모든 파키스탄 국민은 출생증명서와 신분증, 선거인명부, 여권 등 공적 문서에 자신의 종교를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또 공무원이나 군인, 판사 등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이슬람) 신앙 선서를 해야 한다. 자신의 신앙을 밝히라는 이번 판결에 불응하거나 실제와 다른 종교를 기재할 경우 반역이나 헌법 위반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판결을 맡았던 샤카트 아지즈 시디퀴 판사는 “소수 종교인들이 종종 이름이나 복장 때문에 무슬림으로 오인 받아 요직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현상은 각자의 진짜 종교를 명백히 드러내라는 헌법의 요구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구분을 명시한 헌법 260조 3항이 하위 법률로 제정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의회가 무슬림의 신앙보호를 위해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키스탄 인구는 총 2억770만여명이며 이 중 97%가 무슬림이다. 이번 판결은 나머지 3%를 차지하는 기독교, 힌두교, 아흐마디파(무슬림 종파) 등 소수종교를 가진 시민에 대한 차별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키스탄은 ‘신성모독법’으로도 악명이 높다. 파키스탄 형법 제295조는 ‘특정 종교에 대한 적대적 선동’ ‘코란 훼손’ ‘예언자 무함마드 모독’ 등에 대해 강력히 처벌한다.

지난달 26일에는 남부 최대 도시인 카라치에서 신성모독법에 의한 기독교 핍박 중단과 차별적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기독교인들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