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찢을 때와 꿰맬 때 기사의 사진
전도서 3장은 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말씀과 함께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7절)”는 구절이 나온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는 찢는 것과 꿰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창세기 서두는 ‘나누다’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이는 ‘찢는다’고 달리 표현할 수 있다. 광명을 찢어서 별을 만드시고, 낮과 밤으로 찢어 시간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는 것도 ‘찢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이란 인류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별된 이들을 찢으셔서 인류 전체에 복을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의 본토 친척에서 찢으신 것이다. 야곱도 가족과 찢어짐으로 벧엘의 하나님을 경험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고 지상의 모든 나라와 구별된 것도 찢으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찢으심은 온 세상의 복의 통로로 꿰매시기 위함이다. 그렇게 찢어지고 철저히 구별된 후에야 꿰맬 때가 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창 12:3)는 말씀은 곧 꿰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찢으심은 아름답게 꿰매시기 위함이다. 한 영혼을 찢으심은 온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심이다.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과 찢어지지만 부활의 아침에 다시 꿰매어질 것이다.

거룩함은 찢어지고 꿰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과 철저히 구별되고 그것들을 미워하는 찢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과는 철저히 찢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꿰매시는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악을 철저히 미워하라고 분부하시는 것은 찢고 꿰매시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선한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갈등과 전쟁의 관계를 만드신 것은 선한 일을 하신 것이다. 사탄에 속한 악과 끊임없이 적이 되고 전쟁하며 살아가는 삶이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삶 속에서 찢어짐이 없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악과 아무런 갈등이 없고 악과 찢어짐이 없다는 것은 사탄과 한편이라는 얘기다.

‘악(evil)’이라는 말은 ‘산다(live)’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배열해 놓은 것과 같다. 악이란 삶을 거스르는 것이고, 삶이란 악을 거슬러야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 세계적 신학자 하비 콕스는 이렇게 말했다. “선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악이 승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악을 철저히 미워하시는 까닭은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꿰매시어 하나님의 걸작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악으로부터 찢으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우주 전체에서 가장 경이롭고 소중한 존재인 인간의 아름다움을 망치기 때문이다. 싸구려 책에 잉크를 쏟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국보급 고문서에 잉크를 쏟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을 귀하게 볼 때마다 죄는 끔찍하고 혐오스럽게 보인다.

사탄은 인간과 자신을 꿰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권세가 없기에 반드시 인간을 통해서만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탄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만큼만 가능한 것이다.

사탄이 인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작업이 필요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찢어놓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과의 관계를 두텁게 꿰매는 것이었다. 첫째는 성공했다. 그런데 둘째 단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간과 죄를 찢으시고 사탄과 인간을 찢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꿰매시는 일에 성공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악과 찢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꿰매어질 수 있게 됐다.

사순절은 우리 안에 있는 악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찢어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로 찢어진 영혼의 조각들을 다시 꿰매는 기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찢으시고 꿰매시는 하나님의 영적 대수술을 경험하는 이 기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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