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의 두 모습… 영화계는 지원센터 vs 공연계 수정·취소 기사의 사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이 열린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배우 문소리(오른쪽 두 번째)와 법무법인 원의 원민경 변호사 등이 영화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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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는 지원센터
지난 1일 출범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이 거대한 무언가를 덮기 위한, 혹은 진보 진영을 분리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말하는 일부 모함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민주사회로 갈 수 없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센터 든든)의 공동대표를 맡은 임순례 감독은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소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속적이고 끔찍한 성폭력 환경에 노출돼 소리 없이 떠나간 동료 여성영화인들이 적지 않았다"며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일 출범한 센터 든든은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된 상설기구다. ㈔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임 감독과 함께 센터 든든을 이끌게 된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지원, 영화계 교육·홍보, 나아가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입안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2016년 발생한 '영화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벌여 왔다. 영화인 749명(여성 467명·남성 267명·불분명 1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6.1%(여성 61.5%·남성 17.2%)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가해자 성별은 남성(71.6%)이 압도적이었으며 지위는 상급자(48.7%)일 경우가 가장 많았다. 피해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28.2%)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 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23.4%) 등이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7.9%)를 요구받았다는 대답도 적지 않았다. 모든 항목의 피해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연기를 빌미로 촬영 전 합의되지 않은 노출신을 요구받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했다. 조사에 응한 한 여배우 A씨는 "어떤 감독은 갑자기 없던 장면을 만들어 '조금 더 섹시하게 찍어 보자'고 요구했다더라. 그 상황에 거부를 하면 그 배우만 까탈스러운 여자가 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태조사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 참석한 배우 문소리는 "많은 영화인들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며 "그동안 우리 모두는 방관자 혹은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어 "과정의 올바름 없이 결과의 아름다움은 있을 수 없다"면서 "현재 한국영화는 세계적 주목을 받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이제는 과정의 올바름에 좀 더 힘써야 할 때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실태조사 결과 중 가장 서글펐던 건 '피해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하는 여성 비율이 80%에 달한다는 것"이라며 "암울한 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인들은 떠나고 있다. 그 상처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공연계는 수정·취소
거물급 인사들 가해자 지목… 제작 문화 전반에 파장

성폭행 의혹에 휩싸인 이윤택 연출가가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경찰은 이번 주 중으로 이 연출가를 소환해 조사하고 휴대전화 정밀 수사로 위력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뉴시스

공연계가 달라지고 있다. 주요 인사들이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공연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연이 취소되거나 내용이 수정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미투 운동은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공연계 제작문화 전반을 겨냥하는 수준으로 확장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최근 성추행 의혹을 받는 오태석 연출가가 운영하는 극단 목화의 연극 '모래시계'를 취소하고 공연 제작을 위한 지원금 1억원도 사용금액을 제외하고 회수한다고 밝혔다. 모래시계는 예술위의 지원 사업인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 부문에 선정돼 오는 15∼25일 무대에 오를 계획이었다.

배우 조재현의 공연 제작사 수현재컴퍼니는 폐업 수순에 들어간다. 조재현은 앞서 사과문을 통해 "모든 걸 내려놓겠다"라고 밝혔다. 수현재컴퍼니는 현재 진행 중인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연극 '에쿠우스'가 끝나는 다음 달 말 이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뮤지컬 '웬즈데이'도 제작 중단됐다. 에이콤 관계자는 "현재 웬즈데이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은 중단됐다"며 "예술의전당 대관도 취소했다"라고 밝혔다. 웬즈데이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그들과 함께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오는 16일 개막하는 뮤지컬 '삼총사'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캐릭터를 수정했다. 왕용범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극 중 호색한 포르토스 성격에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왕 연출가는 "공연은 판타지라고 해도 사회의 거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투 전부터 사회상을 반영해 인물의 캐릭터가 바뀌어왔다"며 "여자를 밝히는 마초를 남자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다른 면을 부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달 12일 시작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여주인공 알돈자가 남성 5명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의 삭제를 논의 중이다.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 관계자는 "전부터 해당 장면을 불편하게 느끼는 관객들이 많아 장면을 수정하려고 논의했다"며 "미투 분위기가 맞물리다 보니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던 이윤택 연출가가 이끌던 극단 연희단거리패도 창단 32년 만에 불명예 해체하기로 선언했다. 경남 밀양시에 위치한 밀양연극촌도 이사장으로 있던 이 연출가에 이어 인간문화재 하용부 촌장까지 성폭행 의혹을 받으면서 19년 만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연희단거리패와 밀양연극촌은 한때 공동체주의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연극 공동체를 표방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는 공연을 관객이 불편해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무의식적으로 깔린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그렇다고 여성의 부조리한 삶을 표현하는 공연이 금기되고 예술가가 자기검열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건 문제"라며 "젠더가 아닌 섹스의 문제로 왜곡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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