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충전의 시대 기사의 사진
블루투스 연결을 해제하고 휴대폰에 귀를 대자 그제야 C의 말이 들렸다. “응, 이제 들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통화하려 했다는 내게 C는 이런 조언을 했다. “그런 건 20대들이나 쓰는 거야. 새로운 건 더 못하겠어.” 그러나 이걸 건네준 L도 40대 아닌가.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어폰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하니 L은 “고장이 아니라 방전”이라며 충전기와 연결해주었다. 충전된 걸 다 쓴 다음엔 다시 방전 상태가 됐고, 나는 계속 충전을 미루고 있다. 충전을 계속 미루는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래도 C뿐인 것 같다. C는 요즘 일반 전화기를 들여놓을까 생각 중인데,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도 귀찮아서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물건이 하나둘일 때는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충전해야 할 목록이 꽤 길어진 것이다. 이어폰과 휴대폰, 노트북, 전동칫솔, 스탠드, 태블릿PC, 진동클렌저, 그리고 계절에 따라 손난로와 손풍기도 포함된다. 대부분 마이크로 5핀 케이블을 필요로 하는데 그 케이블로 연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건전지를 선호하게 됐다. 충전해야 할 이들의 에너지 잔량을 체크하다가 내가 방전되는 느낌이라고 하면 지나친 엄살일까. 휴대폰 배터리가 3%로 줄어들 때까지 내가 미동도 않는 건 충전 업무 과다로 인한 방전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나를 위해 L이 무선충전 패드라는 걸 주문했는데 뭔가 좀 속은 기분을 주는 도구였다. 내가 상상한 건 진정한 무선, 그러니까 케이블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이었는데 이 충전 패드 역시 충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충전들이 귀찮아질 때면 나는 정말 재래적인 도구 하나를 떠올리는데, 그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가발전기다. 십 년도 훨씬 전에 그걸 사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손으로 열심히 돌려도 발생되는 에너지는 손톱만큼이다. 그걸 떠올리면 확실히 케이블로 연결하는 충전 방식은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냉큼 주워들게 된다. 그리고 케이블의 이 끝과 저 끝을 연결하게 된다.

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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