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다은] ‘사유의 밤’을 아시나요 기사의 사진
올해 1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5대륙 70개국에서 같은 명칭의 행사가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사유의 밤’. 2016년 프랑스 문화원 주최로 시작된 이 행사는 폭발적인 호응과 함께 2017년에는 51개국에 걸쳐 18만명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퍼져나갔다. 2018년에는 70개국 이상이 참가했고, 올해 처음 행사가 진행된 국가로는 캐나다 중국 러시아 대만 그리고 한국이 있었다.

사유의 밤이 진행되는 방식은 한 가지 주제가 정해지면 각국 단체들(대학, 서점, 문화단체, NGO, 아트센터, 연구소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이슈나 문제에 대해 자율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매년 1월 정해진 일주일 기간 중에 진행하면 된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서 세계가 적극적으로 이 행사에 호응하는 이유는 매년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 동시에 고민하고 교류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올 미래를 인류가 ‘같이 그러나 따로’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2018년의 주제는 ‘권력의 상상력’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29일 주한 프랑스문화원 주최로 교보 컨벤션홀에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문화인류학자 벤자맹 주아노 홍익대 교수는 권력의 상상력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보다 쉽고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권력을 상상력에게 돌려주라’는 슬로건이라고 했다. 계몽주의적 이성에게 주어졌던 권력을 상상력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상상력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 이 주제의 토론자는 주아노 교수 외에 철학자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 역사학자 임지현 서강대 교수, 사회학자 장경섭 서울대 교수였다. 이들은 북한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의 과도기와 세월호 참사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소위 ‘한국판 68혁명’, 그리고 한국이 세워나가야 할 새로운 현대성의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권력의 이동과 상상력에 대해 토론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의 밤이 여타의 숱한 토론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흔히 강연이나 세미나는 이미 글로 쓰인 논제를 일방통행으로 발표하거나 한두 명의 토론자를 미리 내정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유의 밤은 이견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사전 대본 없이 생각을 교환하고 서로 반응하면서, 예상 못했던 이야기나 항상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도록 열어두어야 한다. 그런 식의 토론을 통해 부분들이 합쳐지면 전체가 새로운 내용을 형성하게 된다. 상반된 의견 때문에 유발되는 약간의 짜증까지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토론 방식은 나이나 신분을 뛰어넘는 ‘진짜’ 토론이기 때문에, 단번에 가능하거나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첫 행사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식 상상력과 한국식 담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아노 교수는 후기를 전했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돌려주자는 주제가 한국의 첫 행사와 맞물린 것은 각별해 보인다. 사유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시작점으로의 상상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한 프랑스문화원의 디안 조스 문정관은 내년에 한국에서 행사를 더 다양하게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올해 70개국 이상 140개 도시가 이 행사에 의욕적으로 참여했는데,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동참한 일본은 작년에 이미 도쿄와 교토 두 도시에서 진행했다. 앞으로 매년 다른 주제가 정해지겠지만 우리가 당면한 위안부 문제, 남북의 통일 문제, 미투 운동, 환경 문제나 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인류의 위기와 대안을 세계와 ‘함께 그리고 따로’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세계적인 사유의 장에 너무 늦지 않게 한국이 참가하게 돼 다행스럽다.

김다은(소설가·추계예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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