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김정은, 왜 이러는 걸까 기사의 사진
햇볕·압박 정책 어느 쪽도 완전히 옳지도 틀리지도 않아…
보수와 진보로 갈려 싸움만 했기 때문에 실패
강력한 제재와 지속적 대화 제의가 희망적 기회 만들어
두 진영이 전력투구해 정치적 전리품 나눠 갖기를


봄은 좀체 풀리지 않는 궁금증과 함께 찾아왔다. 김정은은 왜 이러는 걸까. 문재인정부 출범 후 열흘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더니 해가 바뀌면서 180도 달라졌다.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해가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에서 핸드마이크로 얘기하던 남북은 정상 간 핫라인을 갖게 됐다. 무엇이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어쩌면 그 답에 북핵 해결의 방향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

손쉬운 추측은 김정은의 예정된 수순이라 해석하는 것이다. 지난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꺼내든 지 5년 만이었다. 어렵게 만든 핵을 이제 써먹어야 한다.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쏘는 건 애당초 북핵의 용도가 아니었다. 핵을 경제와 바꾸고 체제 유지에 활용한다는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테다. 궁극적인 목표는 북·미 수교에 있음이 명확해졌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르다. 평창올림픽이란 계기도 그가 보인 파격의 수위를 다 설명해주지 못한다. 왜 서두르는가.

김정은이 다급해졌다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북한 주민에게 핵 개발 과정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경제에 퍼부어도 모자랄 돈을 핵에 쏟아부었다. 주민들이 감내한 건 그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그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중국까지 동참한 국제사회 제재는 그의 돈줄을 말려버렸다. 석탄을 비롯해 1∼3위 수출품목이 다 차단됐고, 40억∼50억 달러에 불과한 외환보유고가 올가을이면 고갈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핵을 손에 쥐었지만 느긋하게 협상을 즐길 형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해도 박근혜정권이 계속됐다면 신년사에서 한 핏줄을 얘기하고 평창의 성공을 기원했을까. 임신한 여동생을 내려보내고 특사단과 4시간이나 밥을 먹었을까.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폈던 정권에 손을 내미는 건 압박에 굴복하는 꼴이 된다. 박근혜정부와는 대화하고 싶어도 명분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말을 섞어본 과거 정부의 연장선에 있고 제재 와중에도 끊임없이 대화를 말했다.

이처럼 김정은의 변화는 압박과 대화의 합작품이었다. 북핵이란 용어가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다. 역대 정부가 택했던 전략은 햇볕과 제재, 두 가지였다.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길을 번갈아 걸어 왔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북한에 당근을 주며 대화와 평화로 유도하다 이명박·박근혜정부로 바뀌면서 줄기차게 압박해 봤으나 모두 실패였다. 나는 그 원인이 늘 어정쩡했던 우리 대응에 있었다고 본다. 과연 우리는 햇볕정책에 100% 전력투구를 했던가. 과연 제재와 압박에 100% 역량을 쏟았던가.

햇볕정책은 시작부터 폐기되는 날까지 ‘퍼주기’란 비난에 시달렸다. 압박정책은 늘 중국을 설득하지 못했고 사드 배치 같은 부수적 문제로 남남갈등을 겪었다. 반쪽 햇볕, 반쪽 압박에 머물렀던 배경에는 보수와 진보로 갈린 국론 분열이 있었다. 내가 지지하지 않더라도 국민 다수가 선택한 정부가 결정했다면 안보전략만큼은 이 나라 역량을 100% 투입해 실행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내부에서 이 방법이 옳다, 저 방법은 틀렸다 하며 20여년 우왕좌왕하다가 마침내 손에 넣은 북핵 해결의 기회는 절묘하다. 강력한 대북제재가 없었다면 김정은이 속도전 하듯 국제무대로 나오려 했을 리 없다. 지속적인 대화 주문이 없었다면 남쪽을 향해 성큼 손을 내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햇볕론과 압박론 어느 쪽도 전적으로 옳지 않았고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다. 북핵 대응 역사상 가장 희망적인 현 상황은 북한을 정반대로 바라보는 두 시선이 ‘윈-윈’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조짐은 정치권 논평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때만 해도 가시가 돋쳐 있던 야권 반응은 북·미 정상회담 소식에 환영의 톤이 짙어졌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성사된다면 역사적 사건”이라 평가했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핵 진전 상황을 여전히 폄하하는 건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거의 유일하다. 그는 북·미 회담을 ‘미국의 무력행사 명분 축적용’이라고 봤다. 스트롱맨 이미지를 의식한 듯한데 원조 스트롱맨이 대화하겠다는 마당에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앞으로 두 달. 한반도 미래가 걸린 안보외교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이번만큼은 우리 내부의 이견과 갈등을 넘어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적 전리품은 두 진영이 나눠 가지면 좋겠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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