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를 일상의 위드유로] ‘미투’로 바뀐 것 vs 바뀌지 않은 것 기사의 사진
직장인들, 사생활 묻는 것 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 회식 자리도 크게 줄어
여성 관련 농담 서로 조심… 일부에선 아직도 ‘미투’를 유행이나 가십거리로 여겨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이 한국 사회 곳곳을 바꾸고 있다. 무심코 행해져온 관행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인권 감수성도 커졌다. 반면 미투를 유행이나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원생 박모(29)씨는 평소 인터넷에서 접하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과격한 발언에 반감을 넘어 혐오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최근 미투 운동 양상을 지켜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박씨는 “학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교수들이 오랫동안 성폭력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을 보면서 성범죄가 남녀 간 권력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는 여성단체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됐다”며 “이제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던 여성단체의 주장도 아예 틀린 말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남성 비율이 높은 직장에 다니는 박모(27)씨는 여직원이 없는 회식자리에서 동료들과 종종 여성과 관련된 수위 높은 농담을 하곤 했다. 미투 운동이 벌어진 뒤에는 바뀌었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라도 “요즘 같은 때 그러면 큰일 난다”며 서로 조심한다고 전했다.

직장인 권모(27·여)씨의 회사에선 회식 자체가 줄었다. 권씨는 “술을 마시다보면 성적인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아예 회식을 자제하자는 취지라더라”고 전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수만(가명·28)씨는 “미투 이후 서로의 사생활을 묻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진 분위기”라며 “저녁에 할 일 없으면 같이 밥 먹자는 식의 제안도 줄었다”고 말했다.

미투를 장난처럼 소비하거나 조롱거리로 삼는 경향도 보인다. 직장인 A씨는 남자 상사의 말에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상사는 “오늘은 미투 안 떴나? 요즘 그거 보는 재미로 사는데”라며 가십거리인 양 얘기했다. A씨는 “성폭력 피해 폭로가 누군가에게는 시간 때우기처럼 소비되고 있었다”고 한탄했다. 직장인 B씨는 “회사 남직원들이 ‘너도 미투할 거 있니’라고 비아냥조로 물어보면서 미투라는 말을 갖다 쓸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토로했다.

모임에서 남자들이 “나도 미투할 게 있다”며 농담 삼아 미투 이야기를 끌어올 때면 성폭력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은 실제 피해자들이 희화화되는 것 같아 뜨악하다는 여성도 많다.

기업이나 대학, 병원 등에선 미투 운동의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은행은 12일부터 내부 인트라넷에 성희롱신고센터를 만들었다. 여성 직원이 남성보다 더 많은 롯데홈쇼핑은 이달부터 성희롱(성폭력) 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 기관과 연계해 성희롱 사태와 관련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직원의 성폭행 논란이 있었던 한샘은 ‘마음의 샘’이란 이름으로 사내 심리상담실을 열었다. 상담실을 통해 7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일부 대학원생은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해 학과 차원의 공식 기구를 발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학과 내에 특별히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지만 예방하자는 차원이다. 교수가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신한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등은 해당 교수를 강의에서 배제하는 등 즉각 조치를 취했다.

정부도 미투 폭로 한 달 만에 종합 대책을 내놨지만 정착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부터 고용노동부가 운영한 ‘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 창구에는 12일까지 5일간 13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주로 신체접촉이나 성희롱이 있었다는 신고였다. 가해자는 대체로 직장 상사였다. 고용부가 신고를 접수하면 각 지방고용노동청이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조치를 취한다.

접수된 사건들을 조사하고 나면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아직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은 관계법령 위반 여부에 따라 시정·행정처분·사법처리를 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그보다 경미한 조치인 행정지도에 그칠 수도 있다. 성희롱의 강도나 피해자의 처벌 의지에 따라 처리한다는 게 가이드라인이지만 구체적인 지침이 아직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급하게 대책을 발표하느라 개별 사안을 다룰 세부 지침을 다 마련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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