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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변혜정] 미투, 권리는 누구에게 있었나

[시사풍향계-변혜정] 미투, 권리는 누구에게 있었나 기사의 사진
1980년대 말부터 성폭력, 강간 같은 사건과 접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본 적은 없다. 과거 큰 사건이 날 때마다 대중의 관심은 컸다. 그러나 새로운 사건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그런데 요즘은 1990년대와 달리 사건 판단 기준이 더 선정적이다. 역차별, 무고, 명예훼손 등 가해 행위자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사건의 판단은 달라진다. 평소에 믿을 만한, 소위 평판 좋은 사람이 가해자이면 술을 먹고 한 실수나 성 중독 등의 개인적인 일탈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도 당연히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직업, 연령, 관계, 행위가 일어난 장소뿐 아니라 품성, 결혼 여부, 남자관계까지 모두 다 파헤쳐진다.

누구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대중이 평가하는 수준을 떠나서 무엇을 위해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는가이다. 또 피해와 가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평가되는가이다.

대체로 가해 행위자들에 대한 평가는 그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서인지 ‘행위는 믿을 수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런 이유’였을 것이라고 여긴다.

반면 피해자들에 대한 평가는 궁금증을 넘어서 의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유혹, 갈취, 복수 등의 의도를 의심하는 등 피해자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강하다. 피해자가 괜찮은 사람일 경우, 또는 누가 봐도 피해의 정황이 이해될 만할 때 의심을 접는다. 얼마나 ‘피해자다운가’가 피해 판단의 핵심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사건들은 맥락이 중요하다. 어떠한 맥락인지에 따라 그 행위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르게 인지한다. 감정도 다르다. 좋은 가족관계에서 아버지가 우리 딸 ‘예쁘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예쁘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예쁘네’ 등 관계나 장소에 따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맥락이나 피해자의 반응이 궁금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의 구조적 맥락보다 피해자의 품성과 성적 경험, 동기 등에 대해 궁금해 했다. 어떤 맥락에서 누가 그 말과 행동을, 왜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상하관계에서 아래 사람이 위 사람에게 그런 행위를, 그것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가.

미투의 핵심은 권력자의 의지대로 ‘예쁘다, 못생겼다’라는 말이나 행위를 할 수 있는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그리고 피해자를 평가, 판단, 방관, 방조할 수 있는 기존 사회 문화적 관습과 통념들에 대한 질책이다. 누군가를 ‘예쁘다, 못생겼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권력이, 극단적으로 누군가를 취하고, 놀고, 버릴 권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권리가 당연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관습, 관행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투를 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은 미투 말고는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다.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인 권위를 가르침, 친밀성, 심지어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자의 방식’대로 사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늦었지만 국가가 여성들의 분노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권력의 작동이 폭력이 될 수 있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선 늦었지만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점으로 여성가족부는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100일이라는 한시적 기간이지만 피해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겸허하게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을 근절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성차별적 문화도 변화시켜보자. 미투의 힘, 여성들의 힘이 동력이다. 미투의 힘이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할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변혜정 여성인권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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