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아름다운 구속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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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에서 스포츠레저부로 옮겨 일한다. 칙칙한 법원·검찰청이든 녹색 그라운드든, 들여다보면 세상은 똑같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뭔가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나는 세상, 누군가 금을 넘으면 호루라기를 부는 세상. 한순간 실수가 공든 탑을 허물고 결정적 판정엔 시비가 뒤따른다. 승부가 첨예한 경기장 안보다 관람하는 밖이 더 시끄럽다.

기사를 써놓고 보면 세상이 본디 전쟁터나 바둑판인가 싶다. 압수수색이 신호탄이더니 홈런포는 작렬한다. 승리의 교두보와 수사의 9부 능선, 포석과 사활…. 두 세계의 맥락이 닿으니 고비마다 말이 호환된다. 그리고 거기서나 여기서나 기자가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되는 기사는, 구속에 대한 기사다. 최순실의 구속만큼 류현진의 구속도 중요하다.

구속(拘束)이든 구속(球速)이든 본질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힘이다. 하나는 타자(他者)를, 다른 하나는 타자(打者)를 꼼짝 못하게 한다. 그 힘의 효과와 뒷이야기들은 서초동과 야구장이 크게 다르던가. 관중을 열광시키는 것도 공을 쥔 이에게 은근한 자부심이 깃드는 것도, 돌이켜보면 열광이며 자부심의 한편이 아픔인 것도, 구속이다.

구속마다 값이 다른 건 세상이 받아들인 이치다. 몇몇 구속은 전광판의 숫자로 확인되기 전부터 계약서의 숫자로 결정돼 있다. 야구 한 게임에는 300개의 공이 날아다닌다. 시간이 흘러 기록되는 구속은 누군가의 한두 개다. 짧은 비행 뒤의 자리는 천지 차이다. 어떤 공이 박물관에 갈 때 다른 공은 2군 연습장으로 옮겨져 또 얻어맞는다. 똑같이 생겼지만, 역사가 되는 공은 날기 전부터 비쌌다. 사람들 틈에서도 유난히 비싼 자유가 있다. 대기업 회장이 검찰청에 불려오면 불구속 시 변호사의 보수가 몇 억원, 몇 십억원이란 말이 돈다. 같은 날 민사단독 재판부에 오는 사람들은 판사에게 자꾸만 말을 되묻는 맨몸이다. FA 시장의 머니게임을 보도하다 방출 선수의 현실을 쓰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관중은 고연봉 강타자를 돌려세우는 구속에 환호한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던 날 라디오에서는 ‘아름다운 구속’이 흘러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에는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누군가의 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졌다. 권력자들도 죄지으면 수갑을 차고 항문을 검사받는다는 사실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것이다.

놀랄 만한 구속을 선보인 이들에겐 자부심이 있다. 한때 시속 150㎞를 뿌렸노라 회상하는 투수를 물끄러미 바라본 일이 있다. 그의 황홀한 표정에 ‘과거에 사시느냐’ 비꼴 수가 없었다. 초임 시절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비리를 밝힌 검사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1학년’이 ‘1급’을 구속했다”는 찬사로 소개됐다.

환호와 자부심은 한쪽에서 빛난다. 150㎞를 말하던 투수는 현재로 화제를 옮기자 금방 표정이 달라졌다. “영장 보여주고 미란다원칙 시작하잖아요? 다리가 풀려서 일어서지도 못해요.” 피의자들 잡으러 다니던 검찰 수사관은 “‘아름다운 구속’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어느 특수통 검사가 “‘아버지 대신 날 잡아가시라’며 무릎 꿇던 아들도 있었다”고 조용히 말한 날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동료들과 하던 구속영장 발부·기각 돈내기를 그만두었다.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니 제구가 돼야 가치 있는 구속이라 한다. 엉뚱한 데를 향하면 위험하다는 의미다. 흉금을 털어놓은 법조인들에게 구속은 권력이 아니라 고민스러운 의무였다. 영장전담판사 경험이 있는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정확히 반반일 때 어느 란에 도장을 찍었느냐”고 물었다. 반반이면 기각한다는 이들이 많았다. “51대 49가 될 때까지라도 읽고 또 읽는다”는 판사도 있었다. 구속은, 선 곳마다 달리 체감돼서 비극적이다.

TV에 욕설을 쏟아내던 이들이 타석에 들어서면 겸손해진다. “직접 서 보니 다르네요….” 사회인야구인들은 초보들의 아리랑볼과 헛스윙에 깔깔 웃는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프로들의 야구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타자가 잘 치더냐”고 물으면 “내 구속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는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이 마지막이 됐으면”이라고 했다. 단죄를 정치보복이라 암시하는데 프로답지 못하다. 타석에서 비로소 구속의 무서움을 절감하는 건 사람의 본능일 테다. 다만 심판의 콜이 있을 때까지는, 경솔했던 과거를 온몸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경원 스포츠레저부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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