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개헌, 차선책 모색할 때다 기사의 사진
여야, 시대적 과제인 개헌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여겨선 안 돼
한국당 잘못 크지만 집권세력의 자세도 문제
정략 버리고 합의안 마련 위해 머리 맞댔으면

여야가 주요 현안을 놓고 첨예하게 맞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어느 일방의 완승으로 끝난 적은 거의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다. 결론이 나기까지 지루한 싸움이 계속된 탓에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구별하기 힘들다. 이겼다고 주장하는 쪽은 많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고, 졌다고 여겨지는 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기 일쑤다. 합의됐다는 걸 뜯어보면 누더기로 변한 경우가 다반사다. 여야가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폐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논리적·합리적으로 현안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 당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하며 이전투구에 나선 데서 비롯된 우울한 형상이다. 안타깝게도, 시대적 과제인 헌법 개정 문제도 이런 흐름을 타버렸다.

개헌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정보화,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등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1987년 ‘1노 2김’에 의해 정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높아진 국가 위상과 국민들의 눈높이, 달라진 시대 환경에 맞춰 개헌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바꿀 때가 됐다. 비생산적인 정치의 틀 역시 손봐야 한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하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음으로써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성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는 불행한 헌정사를 갖게 됐다. 대통령 권한을 대폭 줄이고,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견제 장치를 마련해 승자독식 구조에 일대 변화를 줘야 한다. 임기 초반의 제왕적 대통령에서 임기 중후반 레임덕 대통령으로 추락하는 악순환도 막아야 한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지 않은가. 여론이 개헌에 호의적이고,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개헌을 약속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요즘도 집권세력과 야당 모두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엇박자의 연속이다. 왜 이럴까. 정파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먼저, 자유한국당의 무모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월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시행이라는 대선공약을 느닷없이 파기하더니 나아가 6·13 동시투표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기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약속 파기에 대한 사과는 없고, 개헌안 발의를 준비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관제개헌’이라는 공격을 퍼부었다.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한국당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이어지자 뒤늦게 분권형 대통령제가 담긴 개헌안을 6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발의한 뒤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개헌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6·13 동시투표에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인 셈인데, 당당하지 못하고 군색해 보인다. 다른 야당들 역시 국회가 개헌의 중심축이라는 말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책임도 무겁다. 개헌을 추진하면서 야당의 협조를 얻으려 노력한 흔적이 거의 없다. 야당이 개헌 협상에 적극 임하도록 설득하거나 명분을 줄 궁리는 하지 않은 채 ‘지난 대선 때 약속했으니 잔말 말고 그대로 이행하라’는 압박뿐이다. 모든 야당들이 대통령의 개헌 발의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 협조 없이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더라도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다. 대통령 개헌안이 무산되면 개헌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니 다른 정략적 의도가 있을 거란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야당에 ‘반(反)개헌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씌워 지방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계산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이 성사되면 좋고, 개헌이 안 돼도 야당 책임론이 확산되는 등 여권 입장에선 밑질 게 없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란 분석마저 나온다.

집권세력과 야당의 팽팽한 대립 탓인지 6월 동시투표를 강하게 주장하는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청와대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대통령 개헌안 발의시점을 늦출 모양이다.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6·13 동시투표는 거의 물 건너갔다고 할 수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 제안처럼 여야가 정략을 버리고 차선책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 현행 헌법의 무엇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절차를 밟기 바란다.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2014년 위헌판결을 내린 재외국민 국민투표를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제14조 1항에 대한 개정작업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개헌안 국민투표의 합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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