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상목] 그레이엄 이후 남겨진 숙제 기사의 사진
194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주차장엔 대형 천막이 들어섰다. 서커스 공연에서 볼 수 있는 천막이었다. 천막에선 서커스 대신 전도자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당시 언론은 이 참신한 천막 아이디어와 함께 열정에 사로잡힌 전도자를 조명했다. 만 30세의 빌리 그레이엄은 이렇게 ‘전국구’ 명사로 떠올랐다. 그레이엄은 이후 런던 집회에서 세계적 전도자로 이름을 알렸고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GEA)를 통해 전 세계 2억명을 직접 만났다. 또 방송과 위성 등을 활용해 22억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주의 ‘대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과연 그에 필적할 만한 대형 전도자가 또 출현할까. 그레이엄 사후 전문가들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복음주의가 수명을 다했다는 비관론부터, 여전히 계속 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나온다. 18세기 조지 휫필드, 19세기 찰스 피니와 DL 무디처럼 21세기에도 제2의 그레이엄이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란 기대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향후 복음주의는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첫째 무신론자와 무종교인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그레이엄의 메시지가 당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그 시대 사람들이 기독교적 배경 가운데 살았기 때문이다. 구소련 등 공산권 국가에서는 덜 했지만 미국 남부와 중부에서의 집회는 폭발적이었다.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적 기독교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장로교 집안에서 조용한 신앙을 갖고 있던 그레이엄도 죄와 지옥을 강조하는 ‘유황불’ 설교를 듣고 회심을 경험했다.

이에 비해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미국의 바나리서치그룹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9%가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2%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로 분류된다. 유럽은 더 심각하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29세 사이 유럽 젊은이 56%가 자신을 무종교인으로 밝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체코(91%) 스웨덴(75%) 네덜란드(72%) 영국(70%) 순이다. 한국 역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인이 국민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20대 64.9%, 10대 62.0%가 각각 무종교인이라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엄 집회가 보여준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한다. 미국 역사학자 토머스 키드 베일러대 교수는 최근 ‘퍼스트 씽스(First things)’라는 잡지에서 “미래의 빌리 그레이엄은 사도바울이 고대 이교도 문화에서 복음을 전한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현대 전도자들은 1세기 무종교 시대에 사도바울이 들어야 했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고 썼다. 사도바울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행 17:18)는 군중의 반응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키드 교수는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가정의 가치를 지키고 효과적인 변증을 펼치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복음주의의 변질이다. 특히 정파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그레이엄은 ‘정치인(statesman)’이라는 별명이 따랐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정치 성향, 신앙 차이와 상관없이 그들과 일관된 우정을 유지했다. 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으며 더욱 중립적인 역할에 머물렀는데 이는 그가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됐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을 향한 시선은 따갑다. 보스턴대 스티븐 프로테로 교수는 한 잡지에 ‘빌리 그레이엄은 운동을 건설했다. 지금 그의 아들은 그 운동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뉴욕타임스도 ‘그의 아들은 다른 길을 간다’며 정치 행보를 우려한 바 있다. 최근 방한한 팀 켈러 목사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 “기독교를 특정 정파적 관점으로 축소해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교회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으로만 묶인다면 사람들은 그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보게 될 것이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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