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내 곁에 산책] 고난을 뚫고 가는 빨간 사과 기사의 사진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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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인가 스페인을 여행하며 곳곳에 말을 탄 돈키호테 동상을 보며 참 많구나, 생각했다. 나도 저리 많은 나를 가지면 좋겠구나 싶었다. 할 일이 많다 보니 하나의 나는 살림을 하고, 또 하나는 작업을 하고, 또 하나의 나는 아무 걱정없이 뒹굴뒹굴 놀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 걱정없이 노는 인생이란 있을 수가 없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은 늘 염려와 고난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돈키호테처럼 무모할지라도 현실을 무시하며 사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서양 언어권에서 단테, 셰익스피어, 몽테뉴, 괴테와 톨스토이가 보여주었던 탁월함처럼 영원한 것이다”라는 해럴드 블룸 글도 있듯이 그는 스페인 국민들의 1등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온갖 사건과 불행으로 이어졌다. 평생 왼손을 쓸 수 없는 3번째 총상에, 노예로 팔려, 4번의 탈출 실패에도 뛰어난 편지글로 사형, 고문을 면했고. 18세 연상의 여성과의 결혼 등 놀랄만큼 드라마틱했다.

이런 작가의 삶은 처음 본다. 그리고 18세 연상과 결혼이라니, 한국의 여자에게 이런 기회란 거의 없다. 여기서 그의 고난을 보자면 이런 대형 고난을 겪어야만 대작이 나오는가 묻게 된다. 내 삶도 인생 고난이 극심했다고 생각하기에 나보다 더한 고난을 겪는 작가를 보면 진짜 스승을 만난 듯이 반갑다. 큰 위안을 받곤 한다. 그 고난을 뚫고 지금껏 왔는지, 아님 고난이 내가 지겨워서 떠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봄이 왔는지 겨울이 간 건지 잘 모르는 것처럼.

요즘처럼 미투의 성난 파도를 타는 시대에 미투를 환영하면서 미투에 익숙해지는 나를 느낀다. 여성이 모든 주도권을 잡은 듯이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피해자인 것 같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수많은 흥미로운 댓글들을 보며 웃다가 우울했다가 오늘은 누가 미투에 걸릴까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확실히 성평등 사회가 되어간다는 반가움도 있다. 또 한편으로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같지 않아 비난하고, 싸우는 일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인간의 숙명이자, 고난이다.

내가 몇 년전부터 겪는 고난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크다. 이 고난은 내 사과 사진작업 모티브 도용사건이다. 처음 알게 된 후 지인에게 ‘토마토도 있고, 레몬도 있는데, 하필 왜 내 콘셉트와 같이 사과를 던지느냐’는 항의를 2번 전했다. 유학파 여성작가의 도용의혹 증거는 나와 중국작가까지 2건으로 SNS에 공론화시켜 작년에 2개의 신문에 기사로 다뤄졌다.

내 페친들의 항의 등 큰 반향에도 내가 시인으로 더 알려진 점에서 내 14년 사진작업을 뺏어 외국에 먼저 알리려고 작정한 거 같다. 막 말로 “대가리가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아, 언제 인공지능 플라스틱으로 머리를 갈아끼웠나 감탄하며 몹시 우울했었다.

상담했던 저작권 변호사는 대사회적인 경고 방식을 권했고 최근 전시소식을 듣고 SNS 경고문을 올려놓았다. 모르고 시작했어도 먼저 한 사람이 있으면 접어야 상식인데,‘도용하는 사람은 죄의식이 없어 계속 도용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의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에는 없는 “의협심”이 남달라서, 끝까지 가리라 예감된다. 먼저 시와 사진에세이에도 기록을 남겨 올해안에 묶어낸다. 9년간 작업해온 ‘From 경주 남산-사과여행#5’도 열 것이다. 죄의식이 실종된 남다른 “대가리”들은 점점 늘어날 거 같다.

하늘은 높고 푸른 어느 아름다운 날 문서를 복사하기 위해 PC방을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은 작년이 기억난다. 200명에 가까운 어여쁜 청소년들이 사람 죽이는 게임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나는 점점 세상살이가 무서워서 성서를, 깊은 신성함이 배인 영성책이라도 꽉 잡고 살려 한다. 고난을 통해 나도 모르는 깊은 목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성공하기보다 어떻게 도리를 지키며, 사랑하며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라는 소리를. 그리고 좀더 참고 인내하라는 소리를.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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