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기석] 내부고발자 지키기 기사의 사진
지난주 세계에서 가장 큰 돈을 번 사람은 내부고발자 포상금 약 890억원(8300만 달러)을 받은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직원 세 명일 것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셋 중 한 명에게 3300만 달러를, 두 명에게 5000만 달러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역사에서 최대 규모 내부고발자 포상금이다. 지금까지는 2014년 3000만 달러가 최고였다. 세 사람이 속한 메릴린치는 건드리면 안 되는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꺼내 투자에 사용했다.

내부고발자들은 자사의 잘못을 증명할 핵심 정보를 SEC에 전달했다. 메릴린치는 결국 벌금 4억1500만 달러를 당국에 냈다. SEC는 정확히 20%인 8300만 달러를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SEC는 내부고발을 계기로 기업에서 추징한 돈이 100만 달러 이상일 경우 10∼30%를 내부고발자에게 나눠주고 있다. 포상금 규모가 인상적이지만 더 눈여겨볼 점은 내부고발자의 신원이 철저히 비밀로 지켜졌다는 것이다. 최초 제보 단계에서부터 포상금 지급에 이르는 2년간 이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세 사람은 앞으로도 같은 은행에서 종전처럼 근무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은 건 직접 제보하지 않고 로펌이라는 중간다리를 거친 덕분이다. 사건을 맡았던 로펌은 내부고발자가 정부 조사관과 통화할 때 음성을 변조할 정도로 신원 보호에 철저했다. 포상금 지급이 발표되고 나서도 상당액이 기부될 것이라는 사실 정도만 외부에 알렸다. 미국에서 기업 내부고발에 로펌이 본격 등장한 건 2011년 이후다.

SEC가 포상금 제한이 없는 내부고발자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내부고발 전문 법률 시장이 생겨났다. 로펌들은 ‘절대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객을 끌어모은다. 시장이 내부고발자의 비밀을 지켜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규정이 바뀌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를 신고한 내부고발자는 최고 20억원을 받을 수 있다. 하도급법과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행위를 신고했을 때는 최대 5억원을 받는다. 하지만 이 정도 포상금으로 ‘인생을 건’ 내부고발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우리는 그동안 소속 기업의 비리를 공개했다가 고통 받는 사람을 숱하게 봤다. 포상금 제한을 없애는 것을 비롯해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보호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회장님 일가’의 부정을 고발할 ‘간 큰’ 대기업 직원이 나타날 수 있다.

권기석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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