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혜림] DDP와 구제옷가게 기사의 사진
서울 남대문에 가면 ‘도깨비시장’이 있다.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만들어내는 것처럼 없는 것이 없는 데다 단속이 뜨면 도깨비처럼 삽시간에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6·25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전후 복구를 위한 구호물자와 미국 PX에서 흘러나온 군용품, 밀수품이 주로 거래됐다. 모두 불법물품들이니 내놓고 팔 수 없었을 터이다. 지금도 남대문 대도상가 D동 지하에 있지만 그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남대문 도깨비시장은 그야말로 만물상이었다. 박격포까지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말해 뭣하겠는가.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그런 도깨비시장에 가셨다. 쇼핑 품목은 커피. 60년대 후반에야 수입된 커피는 사치품목으로 분류돼 관세가 많이 붙었다. 도깨비시장은 커피 종류도 다양하고 값도 쌌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엄마를 따라 그곳을 찾았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무엇보다 싼 옷들이 많았다. 대부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구제품이었다.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일찌감치 ‘빈티지 패션’을 즐긴 셈이다.

지난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수입 구제옷집을 만났다. 반가웠다. 하지만 곧 이게 뭐지? 싶었다. 구제옷집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지난 한주(19∼24일) 동안 열린 ‘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를 취재하기 위해 찾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지하철역 출구와 맞닿아 있는 DDP의 ‘디자인장터’, 그 초입에 수입 구제옷집이 있었다. DDP가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 힘쓰고 있다’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디자인 트렌드가 시작되고 문화가 교류하는 장소’임을 내세우는 곳이다. 더구나 국내외 바이어들과 기자들에게 한국의 패션을 소개하는 ‘서울패션위크’가 봄과 가을에 열리는 곳이다. 그런 DDP의 시작점에 외국의 헌 옷을 파는 수입 구제옷집이라니.

서울시 재단법인인 서울디자인재단은 디자인장터 운영을 GS리테일에 위탁했다. GS리테일은 지난해 8월 이곳을 세계화를 콘셉트로 복합 먹거리·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리뉴얼했다고 발표했다. 수입 구제옷집이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정신의 세계화일까? 지금도 ‘중고○○’나 리퍼브숍을 즐겨 찾으니 수입 구제옷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 ‘디자인·패션산업의 발신지’ DDP에 수입 구제옷집은 걸맞지 않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