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갈수록 고급·대형화… 공기청정기·빨래건조기 新바람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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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꼬리를 감추면서 꽃소식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봄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결혼 시즌의 막이 올라가고 있다. 봄은 ‘청첩장에서 시작한다’는 이들도 있다. 이맘때 유통가에서는 장기적인 경기 불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혼수 준비 고객들을 위한 크고 작은 이벤트를 펼친다. 새로 보금자리를 꾸미는 신혼부부의 혼수 가전을 살펴보면 주거 형태와 생활수준, 기술의 발달 등을 엿볼 수 있다. 롯데하이마트 주재훈 가전팀장은 28일 “1990년대 아파트가 신혼부부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으면서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커졌고, 최근에는 미세먼지 영향으로 공기청정기 빨래건조기 등 새로운 가전제품이 필수 혼수 품목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가전위주로 혼수 리스트가 정형화된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연대별 혼수가전 품목을 살펴본다.

1980년대 혼수 가전 본격 등장

먹고 사는 데 급급했던 1960∼70년대 혼수품은 옷을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는 한복감과 재봉틀이 주류를 이뤘다. ‘꽃님이 시집갈 때 ○○○ 미싱!’ 1970년대 재봉틀의 CM송이다. 지금은 혼수품목에서 사라진 품목이다.

1980년 등장한 컬러 브라운관 TV는 곧 혼수품목 1위를 꿰찼다. 컬러 TV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보급됐다. 소형 컬러 TV와 콤팩트 오디오 및 비디오를 세트로 구성해 거실에 설치하는 것이 신혼부부들의 꿈이었다. 냉장고, 반자동세탁기, 열판식 전기밥솥도 혼수목록에 올랐다. 크기는 비교적 작았다. TV는 14∼20인치, 냉장고는 120ℓ급의 톱마운트(상냉동 하냉장) 방식의 투도어 냉장고가 주류를 이뤘다.

1990년대 중대형·외국산 가전 선호

아파트 보급이 확산되면서 생활패턴이 서구화됐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입식’형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가전제품들이 대형화되고 기능도 다양해졌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25인치 이상 대형 TV, 400ℓ대의 냉장고, 8㎏ 이상의 전자동세탁기 등 중대형 제품을 선호했다.

집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VCR(비디오 카세트 레코더)이 등장해 인기 혼수가전이 됐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에어컨도 결혼할 때 마련하는 가전제품이 됐다. 진공청소기, 무선전화기 등도 혼수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본연의 기능 외에 다양한 기능을 탑재해 편의성을 높인 제품들이 속속 등장해 예비 신혼부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된밥 진밥 등 다양한 종류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전기밥솥, 세탁조 안 물의 흐름을 제어해 세탁물을 물로 비벼 빨거나 공기방울을 이용해 세탁을 하는 세탁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득이 높을수록 소니 TV, GE 냉장고, 밀레 세탁기 등 외산 가전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호화혼수 논란이 불거진 시기이기도 하다.

2000년대 가사도우미·취미 가전 인기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인터넷 없이 못사는 ‘N세대’의 등장으로 혼수가전 목록이 크게 바뀌었다. 맞벌이부부가 늘어나면서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등 가사 노동을 도와주는 가전들이 필수품이 됐다. 또 가사를 주말에 모아 처리하게 되면서 12㎏ 이상 대형 세탁기, 냉동고가 ‘확’ 커진 양문형 냉장고가 필요해졌다. 특히 500ℓ대 이상 대용량 제품, 홈바 등의 부가기능을 탑재한 냉장고가 인기였다. 김치냉장고를 마련하는 신혼가정이 늘었다. 120∼150ℓ 대의 뚜껑형 김치냉장고가 주류를 이뤘다.

인터넷 발달로 컴퓨터와 모니터 세트가 필수 혼수품이 됐다. 2001년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면서 디지털TV 구매가 늘었다. 1980년대 컬러TV 보급 이후 오랜 시간 사랑 받았던 브라운관 TV는 사라졌다. 그 자리를 LCD TV와 PDP TV가 차지했다. VCR도 자취를 감췄다. DVD 등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DVD플레이어와 홈시어터가 대신했다. 신혼여행에 필수 지참물이 된 디지털캠코더도 혼수 가전 목록에 올랐다.

여가를 강조하는 예비신혼부부들이 증가하면서 커피머신, 와인셀러, 게임기 등 취미가전이 뜨기 시작했다. 2007년 당시 50인치 PDP TV에 맞먹는 200만원대의 고가의 커피 머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늘었다. 특히 세탁기, 가스레인지, 가스오븐 등 살림살이를 빌트인(Built-in)으로 내장한 아파트와 오피스텔에서 신접살림을 꾸미는 신혼부부들은 여분의 예산을 취미가전 구입에 할애했다. 비데, 정수기 등도 혼수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즉석밥 등 가정대체식(HMR)이 나오면서 전자레인지가 신혼부부들의 필수품목으로 다시 떠올랐다.

2010년대 초반 실속형 복합가전, 고급화 경향

기술 발전과 물질적인 풍요로 사회 전반에 여유가 자리 잡으면서 혼수 가전의 크기와 성능이 대형화되고 고급화됐다. LED 3D TV가 예비 신혼부부들을 사로잡았다. 안경을 착용하면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는 3D TV는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집에서 감상할 수 있어 인기였다. TV는 더욱 대형화됐다. 30인치, 42인치를 넘어서 60인치 대형 TV를 혼수품으로 마련했다.

한편 주거공간이 소형화되면서 복합가전을 찾는 실속형 신혼부부도 늘었다. 그릴과 오븐 전자레인지를 결합한 복합오븐, 얼음정수기 기능을 결합한 양문형냉장고가 인기를 끌었다.

필수품으로 꼽혔던 컴퓨터 모니터 세트 대신 노트북이 구입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오디오 제품과 캠코더는 혼수가전 목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산화탄소 걱정도 없고 인테리어도 깔끔한 전기레인지(인덕션)가 주방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2010년대 후반 건강가전, 지능형 가전 시대

점점 더 똑똑해지는 전자제품과 환경 변화로 인해 새로운 품목이 필수 혼수 가전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미세먼지는 혼수 가전의 지형도를 바꾸었다. 공기청정기, 빨래건조기가 꼭 사야 하는 품목이 됐다. 의류관리기와 같은 새로운 가전제품과 미세먼지 배출을 최대한 줄인다는 무선청소기도 혼수품목에 올랐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올해 들어 지난 11일까지 건조기,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300%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특히 에어퓨라, 블루에어, 발뮤다 등 고가의 프리미엄 공기청정기의 매출이 신혼부부의 혼수 장만 품목으로 수요가 급증해 200% 이상 신장했다. 다이슨 등의 수입 무선 청소기 매출도 66.2% 신장했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이 적용된 가전제품이 나와 선택의 폭이 한결 넓어졌다. 옷감의 종류나 색상, 오염도에 따라 사용자에게 최적의 세탁 코스를 추천해주는 세탁기, 저장된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알려주고 이를 활용한 레시피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냉장고도 등장했다. 이미 혼수 가전으로 자리를 잡은 대형TV, 양문형 냉장고, 드럼세탁기는 크기와 성능이 한결 업그레이드됐다. TV는 55인치 이상의 초고화질 제품이, 냉장고는 850ℓ대 이상 양문형 4도어 제품이, 드럼세탁기는 15㎏ 이상 제품이 인기다. 특히 드럼세탁기는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하거나 상단에 빨래판을 탑재해 애벌빨래를 가능하게 하는 등 용도를 다양화했다. 에어컨은 직접 바람을 쐬는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측면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미세한 공기구멍으로 냉기를 흘려보내고 공기청정 기능까지 하는 등 똑똑해졌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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