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호수 이름 쟁탈전 기사의 사진
충북은 내륙이다. 바다와 전혀 접해 있지 않다. 그곳에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에 계곡을 막아 충주댐을 만들면서 바다와 같은 거대한 내륙 호수가 생겼다. 호수는 빼어난 경관을 내놓았다. 호수 주변 산자락을 들고나는 굽이굽이는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을 떠올리게 한다. 그 호수 이름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

충주에서는 충주호, 제천에서는 청풍호, 단양에서는 단양호라 부른다. 최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이곳을 국가지명위원회의 의결을 받지 않은 ‘지명 미고시 수역’이라고 밝히면서 해묵은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유명사처럼 표기되던 명칭이 졸지에 무허가 취급을 받게 되자 호수 주변 지방자치단체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 이름 붙이기 경쟁에 나서면서 ‘이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충주호란 명칭이 댐건설과 함께 35년간 사용되면서 전국적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니 충주시는 논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국토지리정보원이 2014년 1월 제정한 ‘저수지 명칭 정비 지침’의 ‘댐 건설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댐 건설로 형성된 저수지는 댐 명칭에 일치 시킨다’는 조항을 근거로 충주호로 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저수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제천시는 충주호를 청풍호로 변경하기 위해 지난 13일 시(市)지명위원회를 열어 가결했다. 이어 28일 청풍호 지명 제정에 대한 안건을 충북도지명위원회에 공식 상정했다. 청풍호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을 상징하는 지명으로, 충주·제천·단양 중 어느 한 지역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조선시대 문헌에 ‘청풍강’이 나오는 역사성도 곁들였다.

조선 후기 역사서인 ‘연려실기술’ 별집 ‘산천의 형승’ 조에는 ‘팔역지’를 인용해 ‘속리산에서 발원한 충주의 달천이 금천 앞에 이르러 청풍강과 합류한다’고 기술돼 있다. 제천 시민단체 등도 국가기본도에 등재된 충주호 지명을 삭제해달라고 국토지리정보원에 요청했다. 호수에 접해 있는 제천시 5개면 61개리가 충주시 행정구역으로 오인되고 있어 자치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양군도 지난해 수중보 물막이 보 준공으로 담수한 상류 구역을 단양호로 부르고 있다. 수중보에서 도담삼봉 등에 이르는 상류지역 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사업 명칭을 단양호 관광종합개발계획으로 정했다. 남한강 수계 지자체들이 인공호의 명칭에 집착하는 것은 지역 최대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수 주변에는 옥순봉 구담봉 등 수려한 자연풍광이 펼쳐진다. 당연히 각종 레저시설도 밀집해 있다. 호수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도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내륙의 바다’에서 멋진 풍광과 짜릿한 전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출렁다리도 조성될 예정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시종 지사는 “청풍호·충주호·단양호 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항이어서 쉽게 결론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와 여당 공천을 다투고 있는 오제세(청주 서원) 의원은 “충주댐 유역 면적 중 제천이 가장 넓은 만큼 제천 지역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역마다 내세우는 명분에 수긍은 간다. 하지만 같은 물줄기를 지역별로 분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호수 명칭을 단체장 개인이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명을 바꾸려면 시·군과 도에 이어 국가지명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지도와 관련 문서 등을 모두 수정해야 하므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지명 제정이 선거의 ‘먹잇감’이 돼서는 안 된다. 선거운동을 위해 충주·제천·단양 주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면 지역 분란만 초래할 뿐이다. 호수 하나 때문에 민심이 사분오열되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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