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And 트렌드] “그래, 이게 행복이지” 소확행에 위로받는 2030

달라진 젊은이들의 행복론

[And 트렌드] “그래, 이게 행복이지” 소확행에 위로받는 2030 기사의 사진
지친 서울살이를 뒤로하고 고향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일상의 소중함을 조명하는 콘텐츠가 소확행 바람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소확행을 누리려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집으로 취미생활 상품을 배송받거나 정기적으로 꽃을 받아보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 JTBC ‘효리네민박2’ 스틸컷 ② tvN ‘윤식당2’ 포스터 ③④ 취미 배송 서비스 ‘하비풀’ ‘하비인더박스’ 홈페이지 ⑤⑥ 꽃 정기구독 서비스 ‘꽃사가’ ‘꾸까’ 홈페이지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2030세대의 행복 담론으로 ‘소확행(小確幸)’이 떠오르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신조어다. 하루키는 1986년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자신의 소확행을 이렇게 묘사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그리고 30여년의 시간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소확행은 하루키의 그것과 비슷한 듯 다르다.

‘#소확행’ 트렌드가 되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18년 트렌드 중 하나로 소확행을 선정했다. 당시만 해도 낯선 용어였지만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대신 소확행을 언급하는 게시물이 빠르게 늘었다. 평범한 행복, 소소한 가치에 집중하는 행복 키워드가 대중의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29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소확행’ 해시태그를 사용한 게시물은 4만개에 이른다. 해가 바뀌면서 태그 사용량이 급증했다. 귀여운 소품, 반려동물, 맛있는 음식, 오후의 커피 한잔.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소확행은 대다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화려한 휴가 사진으로 도배된 ‘#욜로’ 게시물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취미도 집에서… 나만의 소확행 찾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에 가장 가깝고 편안한 장소는 집이다. 집은 안식처를 넘어 놀이공간이자 나만의 아지트로 여겨지고 있다.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장 이준영 교수는 “올해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줄이고 집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의 성장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업체가 선정한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송 받는 정기구독 서비스다. 잡지나 우유 등에 머물렀던 정기구독 상품은 꽃, 화장품에 이어 취미생활까지 확대됐다. 천연가죽 필통 만들기, 네온사인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것) 등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핸드메이드 키트를 1∼6개월 간격으로 배송 받는 식이다. 두 달 전부터 취미 배송을 이용 중인 직장인 이모(30)씨는 “매달 새로운 취미 상품이 공개될 때마다 나를 위한 선물을 열어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여행?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

먼 미래의 거창한 행복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 그래서 여행은 가까이, 더 자주 떠난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5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여행 계획을 조사한 결과 유명 관광지·도심 속 랜드마크 방문(42.8%)보다 동네 산책이나 카페 투어 등 소소한 일상 속 여행(52.2%)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외 여행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가 뜨고 있다. 여행가격 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의 검색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검색 비중이 가장 크게 늘어난 곳은 일본 기타규슈, 베트남 하이퐁, 일본 구마모토, 캐나다 퀘벡, 일본 시즈오카 순이다. 스카이스캐너는 “기타규슈 검색량이 전년 대비 약 22배 증가했다”며 “저비용 항공사 운항과 일본 소도시 여행을 원하는 니즈가 맞물려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방송·영화에 스며든 소확행

tvN ‘윤식당2’, JTBC ‘효리네 민박2’는 일상의 소중함을 조명한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이다. 두 방송은 소확행 코드와 맞물려 각 방송사의 예능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시즌1과 비교해 달라진 건 없다. 식당과 민박집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방송을 앞두고 있는 MBC ‘이불 밖은 위험해’와 tvN ‘숲 속의 작은 집’ 역시 ‘대놓고’ 소확행을 표방한다. ‘이불 밖은 위험해’는 집에 있는 것이 가장 즐거운 스타들의 공동휴가를 담았다. ‘숲 속의 작은 집’은 제주도 자연 속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며 스스로 행복을 찾는다는 콘셉트다.

임용고시에 실패한 주인공이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지난달 28일 개봉해 11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었다. 끼니마다 요리하고, 농사짓고, 소꿉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주인공은 위로받고 성장한다.

다양성영화(저예산·비상업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인 ‘소공녀’ 역시 소확행을 말한다. 서른 넘은 나이에 친구집을 전전하는 주인공은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개비만 있으면 불행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손에 잡히는 행복’을 좇는 주인공에게 관객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소확행’으로 다시 행복을 꿈꾸다

‘인생은 한 번뿐’. 지난해 청춘의 가슴을 뛰게 한 ‘욜로’는 시간이 갈수록 소비를 부추기는 마법의 주문으로 통했다. ‘탕진잼’(돈을 탕진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욜로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개그맨 김생민은 “스튜핏”을 외치며 절약과 저축으로 미래를 준비하라고 외쳤다. 가상화폐는 ‘수저 색을 바꿀 마지막 기회’로 여겨지며 20, 30대를 유혹했다. 현실을 즐겨야 할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욜로가 소확행으로 구체화되기까지 젊은이들은 양극단을 오가며 삶의 가치를 고민했다.

소확행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연히 따라오는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7년부터 매년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해 온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지난 12년간의 트렌드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13년 이후 안식과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성장이 정체하면서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 키워드’ 조사에서 10명 중 7명 이상이 ‘소확행에 공감한다’(75.1%)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82%가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취업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58.5%) ‘생활비 마련이 어려워서’(32.3%)가 가장 큰 이유였다.

소득 격차, 취업난, 무한경쟁. 한국에 정착한 소확행 뒤에는 어느 것 하나 행복하지 않은 척박한 현실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소확행은 정말 ‘작고 확실한 행복’일까. 주어진 현실에서 가장 큰 행복, 너무 짧아 놓고 싶지 않은 찰나의 행복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