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매화, 찬란한 이 봄 기사의 사진
정직성 ‘201728-梅’,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릭. 194x259cm. 조현화랑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굵은 붓으로 툭툭 점을 찍듯 그려낸 꽃잎들이 섬광처럼 빛난다. 길고 혹독했던 추위를 딛고 터뜨린 뽀얀 꽃망울에서 봄의 새 기운이 가득하다. 옛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매화도와는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버전의 매화도’를 선보인 작가는 정직성(42)이다. 정직성은 새벽녘 만난 매화꽃무리를 격렬한 필치로 그려냈다.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서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는 매화의 에너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디테일은 생략한 채 꽃에 집중했다. 붓을 쥔 화가의 강렬한 스트로크가 그대로 투영된 대형 화폭에서 봄이 찬란히 빛난다.

정직성은 원래 도시 공간에 관심을 기울여 온 작가다. 급속한 개발의 현장과 폐자재가 쌓인 공사장을 추상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려 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95학번으로 23년째 공부 중이니 가방끈 엄청 길지만, 경제계급적으론 열악한 등급”이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그가 좁은 토지에 다닥다닥 들어선 연립주택이라든가 공사장을 그렸던 것은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마흔 번이나 이사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직조해낸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누군가의 삶이 꿈틀대는 도시 풍경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오늘의 작가상’(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부)을 수상하게 했다. 그런 정직성에게 꽃그림은 뜻밖이다. 하지만 일필휘지하는 붓질로 매화를 새롭게 해석해낸 시도라 돋보인다. 다섯 살 때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변두리를 전전하면서도 화가의 길을 치열하게 달려온 여성 작가는 매화도에서 남에게 보이는 꽃이 아니라, 스스로 만개한 꽃이 됐다. 그것은 희망의 자화상이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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