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철오] 가스실에서 48시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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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제 절반을 넘겼을 뿐인데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현기증도 몰려온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게 10초의 짧은 무호흡은 어려운 도전이 아니다. 초읽기는 계속된다. 머릿속으로 마지막 숫자 ‘열’을 외친 순간, 입속에 잔뜩 머금고 있던 숨이 뿜어져 나온다. 곧 코앞의 공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신다. 딸꾹질이 날 때마다 습관처럼 숨을 참아 멈추려 하지만 결국 얻는 것은 한 줌의 공기도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호기성 생물은 물이나 식량보다 많은 양의 산소를 소비한다. 갈증과 허기는 하루를 넘겨 참을 수 있지만 산소는 4분만 공급받지 못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1인당 하루 평균 산소 소비량은 500ℓ. 무게로는 약 15㎏이다. 수천만년 동안 조금씩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많은 양이 남아 있다. 대기의 21%는 산소로 구성됐다. 우리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 상(賞)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사유화는 불가능하다. 지구상 거의 모든 자원이 갈등과 분쟁을 촉발했지만 공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독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어도 공기만은 공평했다.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일주일 내내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잿빛 하늘은 우리에게 더 이상 공기를 당연한 자원으로 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 집집마다 닫힌 창문, 수년 전보다 한산해진 주말의 도심은 언젠가부터 한국의 봄날을 상징하는 풍경이 됐다. 추위가 풀리면 미세먼지, 미세먼지가 걷히면 황사가 찾아온다. 곧 산천을 화려하게 물들일 개나리와 진달래,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휘날릴 민들레 홀씨와 벚꽃 꽃잎도 오염된 대기에 휘감겨 빛을 잃었다. 이쯤 되니 미세먼지를 걷어냈던 꽃샘추위의 성가신 강풍과 축축한 겨울비가 그리울 정도다.

일주일째 ‘미세먼지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그 시작이 된 지난 주말 서울 도심 풍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과 비슷했다. 주말 48시간 동안 ‘가스실’로 돌변한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 집안 구석구석에 쌓인 이산화탄소와 생활 악취를 내보내고 싶어도 환기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3분 이내의 짧은 환기로 다른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편이 낫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정작 미세먼지로 가득 찼을 것으로 여겨지는 창밖 풍경을 보면 공포부터 찾아왔다. 탁한 대기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 위축시킨다.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게 깔린 동네 골목에선 아이들의 떠들썩했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사람이 몰린 곳은 지난 주말 개막 2연전이 열린 전국 5곳의 야구장 정도였다. 10경기에 18만명의 관중이 동원됐다. 이곳에서도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선수와 치어리더를 불편한 표정으로 보면서 걱정부터 한 사람들이 있었을 테다.

이달 마지막 일요일이던 지난 25일 환경부는 관측 사상 최악의 수도권 대기질을 측정했다.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서울 102㎍/㎥, 경기 109㎍/㎥, 인천 97㎍/㎥으로 각각 나타났다. 초미세먼지의 ‘좋음’ 수준은 15㎍/㎥ 이하. 이보다 6배 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국민 50%의 일과 삶의 터전인 수도권을 뒤덮은 셈이었다. 미세먼지는 30일 낮 한때 잠시 물러가 환기할 기회를 주더니 밤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 주말에도 ‘나쁨’ 수준의 미세먼지가 예고됐다. 다시 ‘가스실’에 갇혀 주말 48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배출하면서 인지하지 못한 채 악화를 방관하는 무지든, 편서풍이 부는 북반구에서 ‘세계의 공장’ 중국 바로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오염된 대기를 뒤집어쓰는 불운이든 한국에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북한의 미사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폭언도 당장 안방까지 파고든 미세먼지 공포와 비교하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 땅에서 살아갈 젊은이들에겐 더 암울하다. 입시, 취업, 결혼, 육아, 전세 외에도 환경이라는 새로운 고민이 이들 앞에 놓였다. 현상은 문제를 말해준다.

여론은 대기질만큼 사나워졌다. 5년쯤 된 일이다. 미세먼지 관련법 논의는 언제나 정쟁의 뒤로 밀렸다. 법제화 움직임은 이제야 시작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7일 환경소위를 열어 미세먼지 관련 법안 심의에 들어갔다. ‘미세먼지 대책 특별법’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 특별법’ 등이 거론된다. 영국에서는 1952년 그레이트 스모그(Great Smog)를 계기로 청정대기법이 제정될 때까지 4년이 소요됐다. 그 사이 1만2000명이 사망했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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