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그해 팽목항 동백꽃 기사의 사진
버스 타고 광화문을 지나 여의도로 출근한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는 여전히 4·16 세월호 참사 관련 광장 부스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촛불 집회 이후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부스를 치울 수 없을 만큼 현안이 남아 있으려니 싶다. 지난겨울 혹한에 고생하는 이들이 늘 안쓰러웠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소시민 심정으로 이제 봄이 됐으니 그만 부스를 거뒀으면 한다.

1980년대 초였다. 당시 20대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의 주인공 영훈과 같이 방황하던 시절이었지 싶다. 슬픔이 지배하던 때였다. 늦겨울 나는 진도 팽목항 동백꽃 핀 절벽에 서 있었다. 당시 팽목항 일대는 진도 사람들이나 볼 수 있는 동백꽃 절경 군락지였다. 진도대교도 없던 시절이었고 서울에서 진도까지 차와 배로 12시간 이상 걸렸다.

팽목 일대 동백은 해안절벽 바위틈에서 자라 군락을 이뤘다. 온통 동백숲이었다. 꽃은 늦겨울이면 만개했고 남녘 맹골수도에 봄바람이 닿을 쯤 후드득 지기 시작했다. 진도 사람들은 일본 사무라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꽃이 동백이라고 했다. 댕강댕강 목이 잘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소름이 돋았다. 후드득 진 꽃잎은 바로 바다로 떨어졌다. 물 위에 떨어진 꽃잎은 붉은 카펫이 되어 출렁였다. 현기증이 났다. ‘진도 사람들만 아는 절경’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후. 30여년이 지나 몇 차례 팽목항에 갔다. 동백군락 절벽은 깎여 드넓은 항구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해안 절벽 동백은 불법 손길들이 캐가고 없었다. 등대만이 기억을 되살려 줬다. 팽목항은 슬픔과 울분, 좌절과 아우성만 남았고 그해 봄은 악령이 지배했다. 참사에 따른 낙도 피해 주민을 돕기 위해 나섰던 우리 일행은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맹골수도 부근 흩어진 섬들에 닿았다. 바다에 떠 있는 것들은 모두 동백꽃 낙화로 보였다. 우리는 내내 울었고 어디서 건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해 6월 팽목항이 보이는 언덕배기 시골교회에 들렀다. “자식 잃은 아버지들이 아내를 팽목항에 두고 혼자 올라오시곤 했어요. 교회 옆 구멍가게에서 술을 드신 후 예배당 십자가 앞에서 꺼이꺼이 우십니다. 같이 울 수밖에요.” 목사가 팽목항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2018년 4월. 우리를 지배했던 검은 그림자가 걷혔다. 우리의 염원과 기도가 아이들을 구원에 이르게 했다. 봄이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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