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서울대 연구진실委에 묻다 기사의 사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진실위)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상아탑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 대학에서 국문과 전체 교수가 표절 의혹이 제기된 동료 박모 교수에게 사직을 권고한 놀라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당사자는 사직하겠다고 했다. 학교 당국은 수리하지 않았다. 당국의 처사는 사표를 통한 ‘먹튀’를 막고 표절 여부를 끝까지 가려 ‘징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이해가 됐다. 적어도 그때는.

진실위는 박 교수의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경중의 판단을 내리고 징계위원회에 건의를 하고 당국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사이 가을학기가 끝났고, 겨울방학도 끝났고, 다시 2018년 봄학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한 달이 넘었다. 지금까지 어떤 조치도 없다.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를 주도한 학생들에 대한 중징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당국의 박 교수 사표 반려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식 술수가 아니었나, 의심마저 피어오른다.

서울대 국문과는 임시방편으로 지난 학기에 박 교수를 무급휴직 처리했었다. 이번 학기에도 그렇게 했다. 캠퍼스에 봄이 완연하지만 국문과의 분위기는 미세먼지 자욱한 것처럼 흐리다.

“어찌 돼 가는지 몰라 답답합니다. 우리로선 최선을 다했고, 공은 학교 당국으로 넘어간 것인데…. 가부간 어떤 결정을 내려줘야 새로운 사람을 뽑든지 말든지 할 텐데….”

당국의 늑장 처리로 박 교수가 전담해 온 국문과의 비교문학 강의는 1년째 폐강됐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연결하는 비교문학은 글로벌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 커지는 학문이다. 수업권 침해를 학교 당국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가. 그가 지도한 석박사 대학원 학생들도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 표절 문제에 학교 당국이 애매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윤리 의식이 해이해질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진실위는 2005년 세계 과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황우석 사태 이후 만들어졌다. 2006년 이후 적발된 연구부정 10건 중 1건만 중징계를 했다. 표절 교수를 계속 강단에 세우는 안이한 대처를 한 것이다. 이것이 ‘표절 불감증’을 낳고 남의 연구 성과를 먹고 사는 ‘연구 괴물’을 키운 것은 아닐까.

진실위의 조사를 받고 있는 박 교수의 논문은 무려 20여편이다.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총 1000여쪽 분량의 3권짜리 책자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원생 리포트를 베꼈다는 내용도 있다. 학부 선배인 서울대 불문과 원로교수가 자기 논문을 표절했는데도 방치한 것으로 나타나 ‘논문 상납’ 의혹까지 나왔었다. 그 원로교수도 지난 학기엔 강의를 안 맡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있다가 이번 봄학기에야 휴직 처리됐다. 불문과 관계자는 “본부에서 너무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라고 설명했다. 진실을 가르쳐야 할 인문대학에서 자행된 일이다. 논문 공저자에 미성년 자녀를 올린 일명 ‘자식 끼워 넣기 논문’이 가장 많은 곳이 서울대다. 그렇게 서울대의 연구윤리 의식은 땅에 떨어졌다.

10년이 넘은 진실위의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비밀주의와 무기력을 꼽고 싶다. 지나친 비밀주의는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진실위는 박 교수 사안을 취재할 때마다 발언권이 없다며 본부 측에 떠넘긴다. 교무처장은 “진행 중”이라고만 답한다.

서울대 규정에 따르면 진실위는 예비조사 기간, 본조사 기간을 다 합쳐도 최장 150일 이내에 사안을 판단해 총장에게 제재조치를 요청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조사가 시작됐다 쳐도 연말에는 조치가 취해졌어야 했다.

차기 총장 선거가 5월에 있기 때문에 ‘레임덕’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총장 성향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총장 성향 따라 흔들리는 거라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그런 진실위는 없어도 된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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