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하윤해] 한국당 초선 의원들에게 기사의 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9년 12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5공 비리 및 광주특위 연석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으로 일곱 차례나 청문회가 중단됐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포 명령과 관련해 “자위권 행사 문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행사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변명하자 야당 의원들은 폭발했다. 여섯 번째 정회가 선포돼 전 전 대통령이 청문회장을 빠져나간 뒤 당시 초선이었던 노무현 의원은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졌다. 민정당 의원들이 문제 삼자 노 의원은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다운’ 말 한마디를 남겼다. “전두환의 증언 내용과 저의 행위 중 어느 것이 더 비난받아야 합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조 청문회 스타였다. 국회에서 명패를 던져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니다. 그는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5공 인사들을 몰아세웠고, 이를 본 국민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사고뭉치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지만 노 전 대통령은 초선 때부터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의 한국 정치를 경제적으로 비유하면 사실상 독점 구조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70%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47%, 자유한국당 14%, 바른미래당 7%, 정의당 6%, 민주평화당 1%다. “남북한이 모두 일당 체제”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다.

한 원로 정치인이 사석에서 “정치인은 좋은 마누라보다 좋은 라이벌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러 회사들이 내놓은 질 좋은 제품들이 경쟁할 때 시장경제는 발전한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여권의 독주에는 무능한 경쟁자가 일등공신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정부가 홀로 우뚝 서 있는 현 상황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위험한 구조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정당 간의 균형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여러 중도 우파 정당들이나 일본 자민당과 같은 온건하고 개혁적인 보수가 정당 체제의 중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이 온건 개혁보수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병이 하나가 아니라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이율배반적인 분위기도 병폐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사석에서는 “홍준표 대표 때문에 당의 지지율이 안 오른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홍 대표 앞에서는 입도 못 떼는 의원들이 다수다.

한국당에서 홍 대표의 리더십만큼이나 비판 받는 대상은 무기력한 초선들이다. 한국당 초선 의원은 43명이다. 한국당 전체 의원 116명 중 37%나 되는 수치다. 하지만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국민 여론과 괴리된 한국당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줘야 하는 초선 의원들이 ‘올드보이’보다 더 답답해 보인다. 한 3선 의원은 “예전에는 돈키호테 같은 초선들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돈키호테가 그립다”고 말했다.

많은 초선 의원들의 뒤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 ‘진박(진짜 박근혜) 공천’ 시비가 일기도 했다. 한국당 초선들은 국민일보가 최근 정치학 교수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악의 인재영입 사례로 20대 총선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공천이 꼽힌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한 초선의원은 “정풍운동에 나서고 싶어도 당내 권력투쟁에 악용될까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이해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주눅 든 초선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 없다. 2016년 4월 13일 총선에서 당선됐으니 한국당 초선들도 3년차 중고 신인들이다. 초선다운 패기로 한국당과 한국 보수에 신선한 바람을 전해 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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