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김정은, ‘널문’ 넘어 서울로 오라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첫 북한 최고지도자로 기록된다.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 주석이 비밀리에 서울에 왔었다는 풍설만 있을 뿐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한 땅을 방문했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김 위원장은 1일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서 “가을엔 결실을 갖고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서울에서 하자”고 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판문점을 방문하면 남한 땅을 밟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애매하다. 판문점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판문점은 유엔사와 공산 측이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MDL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600m의 장방형 지역이다. 공식 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이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널문’이라는 지명으로 초가집 몇 채만 있던 마을이었다. 1951년 10월 이곳의 ‘널문리 가게’(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가게)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휴전회담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3개국 언어를 사용했는데 중국어 표기를 고려해 ‘판문점(板門店)’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판문점은 남한 행정구역상으론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북한에선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한다. 서울에서 62㎞, 평양에서 215㎞ 떨어져 있다. 문제는 남북한 쌍방의 행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구역이라는 점이다. 공식적으론 남과 북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니다. JSA 남측 경비는 2004년 10월 31일부터 한국군 부대가 담당하고 있지만,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이 JSA 남측 지역의 평화의집을 방문한다고 해도 남한을 방문했다고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남과 관련해 선대의 약속이 존재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문 5항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김 전 대통령이 “나이 많은 내가 먼저 평양에 왔는데 김 국방위원장이 서울에 안 오면 되겠느냐”고 설득해 합의한 약속이다. 2007년 10·4 선언문 8항에도 “남과 북은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조건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 국방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과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수반으로서 갈 수 있다.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될 때는 내가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미사일, 핵 문제요”라고 부연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무효화되지 않았다. 정상 간의 합의이므로 선대의 약속이라도 지키는 게 도리다. 김 국방위원장이 언급한 대로 차기 회담에서 핵·미사일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방남 조건은 갖춰졌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최고 수준의 보장이 될 수 있다. 정상 국가라면 프로야구 방식처럼 정상회담도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순리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방남을 언급해야 마땅하다.

또 북한이 정상국가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면 김 위원장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도 ‘통 큰’ 결단이 요구된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평양행을 원하겠지만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밝힌 김 위원장이 워싱턴으로 가서 공개적으로 핵 포기를 선언한다면 진정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워싱턴행이 25년째 불신의 벽에 갇혀 있는 북핵 협상을 제 궤도로 되돌리는 좋은 방법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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