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추락, 회복 그리고 은총 기사의 사진
사람들은 인생의 전반전을 잘 치르고 살면, 후반부 인생은 덤으로 주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후반부 인생의 더 먼 여정에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할 과정이 있다. 넘어지고 추락하는 것이다. 중세의 기독교 영성가 레이디 줄리안은 “먼저 추락이 있다. 그 다음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라고 말했다. 전반부 인생에서 실패와 추락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후반부 인생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와 추락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통제할 수도, 설명할 수도, 바꿀 수도,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을 한 번 이상은 만난다. 자신의 잘못으로 추락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잘못으로 암흑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추락은 예감할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추락할 땐 에너지조차 필요 없다. 그저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밑으로 떨어진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추락이란 것을 그때는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분수대의 물줄기가 하늘로 솟아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은 완전히 땅속 깊이 내려가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영성가 리처드 로어는 저서 ‘위쪽으로 떨어지다(Falling Upward)’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뛰어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실은 위쪽으로 그리고 앞쪽으로, 영혼이 그 온전함을 발견하고 마침내 옹근(온전한) 전체와 연결되어 큰 그림 안에서 살아가는 더 넓고 더 깊은 세계 속으로 떨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고 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기는 것이다.”

추락과 몰락은 은총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것이다. 추락이 은총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방법을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중 ‘상실과 회복의 법칙’이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법칙이다. 성경에서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불리기 위해 밤새 천사와 씨름해 환도 뼈가 부러져야 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회복시키시는 신비한 섭리에 ‘중력과 은총의 법칙’이 있다. 우주의 모든 것엔 붙잡아주는 중력이 있다. 하지만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면서 하늘 높이 자라 열매 맺게 하는 생명력은 중력의 힘보다 크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 두 가지 힘을 시몬느 베이유는 ‘중력과 은총’으로 표현했다. 잡아당기는 중력이 있음에도 예외적인 은총의 힘이 있어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를 계기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라고 말씀하실 듯싶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회복 탄력성’을 주셨다. 회복 탄력성은 시련과 역경을 딛고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이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역경에 맞닥뜨렸을 때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이 올라간다.

상처가 강점이 된다. 상처가 없는 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1등급이지만 (갈라진 틈이 저절로 붙어) 상처가 회복된 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특급 바둑판이 된다. 특급 바둑판은 탄성이 좋아서 바둑돌로 상처를 받아도 얼른 제 상태로 돌아가 원상 회복능력이 높다. 추락으로 인한 상처는 오히려 최상급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인생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추락이 있으면 회복이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내려가는 길을 올라가는 길로 볼 수 있을까. 이는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한다’(칼 융)는 사실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이 먼지 알갱이처럼 작게 느껴져도, 상처투성이라도 살아만 내면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성경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새번역, 요 1:5)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