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 교계 최초 집대성

‘한국기독교회사 3권’ 출간한 박용규 총신대 교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 교계 최초 집대성 기사의 사진
박용규 총신대 교수가 8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한국기독교회사 3권’을 소개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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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사 3권’ 집필이 1, 2권보다 훨씬 수월할 줄 알았습니다. 최근 일어난 일이고 어느 정도 식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차 쓰는 데만 5년이 걸렸습니다.”

박용규(62) 총신대 교수가 최근 ‘한국기독교회사 3권’(한국기독교사연구소)을 출간했다. 1300쪽 분량으로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교회사를 다루고 있다. 교계 최초로 집대성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박 교수는 “2004년 집필을 시작했는데, 2009년 12월 대장암, 2010년 1월 폐암과 투병하면서 잠시 중단됐다”면서 “질병을 극복한 뒤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여름·겨울방학 때 미국 예일대에 보관된 60년대 이후 선교사 보고서 등 흩어진 교회사 자료를 찾아 한국교회 주요 장면을 복음주의 관점에서 소개하기 위해 힘썼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절대적 기여를 했던 한국교회 활동을 6개 장면으로 나눴다. 특히 ‘오순절운동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급부상’을 한 장으로 빼서 교회에 끼친 절대적 영향력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총신대 총장 사태도 언급된다.

그는 “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경제발전 민주주의 세계화라는 3가지 키워드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면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보수 복음주의 교회들은 체제 안정에 절대적 기여를 했으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은 경제발전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진보 교계가 민주화운동, 산업선교를 이끌고 세계 각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인 성도들이 세계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책에서 90년대 정체기를 맞은 교회 상황을 분석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대중 전도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을 통해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면서 “그런데 한 세대(약 30년) 만에 갑자기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8년부터 1992년 교회의 정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 이유를 봤더니 1992년 10월 종말을 외쳤던 이단 ‘다미선교회’와 매스컴을 통해 확산된 부정적 이미지 각인이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90년대 신도시 개발과 함께 교회의 주일 저녁예배가 폐지되고 교인들에 대한 영적 도전이 감소되기 시작했다”면서 “신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검증 안 된 목회자들의 자질 문제가 교인 수 감소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현재 교회사를 담고 있다 보니 책에는 생존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한국교회와 사회를 어지럽힌 이단들도 나온다. 박 교수는 “생존 인물에 대한 평가는 8대 2로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 부분을 함께 다뤄 해석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면서 “이단 관련 부분은 변호사 자문을 거쳤는데, 아내가 새벽마다 법적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웃음).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마케팅 등에 주력하면서 돈 앞에 무너져 세속화의 길에 접어들었고, 이것이 금권선거로 이어졌다”면서 “목회자들 또한 부유한 생활이 드러남에 따라 젊은이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적인 교회가 근본주의 분리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시대의 역행”이라며 “우리 모두 뼈를 깎는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복음의 순수성을 계승·전파하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3년 후 정년을 맞는다. 박 교수의 꿈은 1997년 설립한 한국기독교사연구소를 통해 자랑스러운 신앙유산을 교회마다 적극 알리는 것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 신현가 인턴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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