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혜림] 윤중로 벚꽃을 보며 기사의 사진
서울 여의도 윤중로는 요즘 벚꽃축제로 시끌벅적하다. 회사가 윤중로에 있다 보니 해마다 벚꽃구경을 하고 있다. 서강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윤중로는 풍경화보다 더 그림 같다.

활짝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윤중로 벚나무. 그 출생지는 일본이고, 성장지는 창경궁이다. 일본은 1909년 전각들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열었다. 일본에서 그들의 상징인 벚나무 1000여 그루를 들여와 심었다.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기까지 했다. 일본이 훼손한 창경궁의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수강궁을 지었다. 그 터에 1484년 성종이 세 분의 대비를 위해 중축하고 창경궁으로 명명했다. 정조·순조·헌종 등 왕들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 최대의 ‘팜파탈’ 장희빈이 살다 죽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왕조 역사를 고스란히 보듬고 있던 그곳을 일본은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 광복이 되고도 그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장년층들은 창경원 벚꽃놀이를 추억으로 갖고 있을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청춘남녀들은 밤에 ‘벚꽃비’를 맞으며 데이트할 수 있는 4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제가 연출한 ‘창경원 벚꽃놀이’는 1983년까지 이어졌다. 1986년에야 창경궁은 제 모습을 찾았다. 동물원을 헐고 전각들을 되살리고 벚나무들을 없앴다. 일부는 베어버리고 일부는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심었다. 창경궁 벚나무가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새 터전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자생종인 왕벚나무였기 때문일 것이다.

윤중로의 벚나무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양 잘 자라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윤중로 벚꽃은 새색시의 연분홍 갑사치마처럼 화사했다.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운 하늘빛이 회색빛으로 변한 요즘 벚꽃은 생기를 잃고 있다. 우중충한 배경 탓만은 아니다. 왕벚나무는 꽃이 크고 많이 피며, 잎보다 먼저 꽃이 나온다. 그래서 초록 잎사귀 없이 연분홍꽃만 구름처럼 피어났다 스러지는 절경을 연출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꽃과 잎사귀들을 한꺼번에 내놓는 벚나무들이 늘고 있다. 이상기온 탓이리라. 미세먼지도 이상기온도 지구촌에 세 들어 사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망가진 지구는 창경궁처럼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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