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배병우] 한미연구소 소장 교체는 옳다 기사의 사진
박근혜정부 때인 2014년초 이미 주미 대사관 등 회계 불투명성 등 문제 제기… ‘코드 인사’ 주장은 무리
정부, 연구기관 기부 후 예산·인사 등 간여 않는 미국 문화 간과하고 거친 대응으로 논란 키워

SAIS(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내 USKI(한미연구소). KEI(한미경제연구소). 대부분의 국민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영문 약자다. 외국 국민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외교 활동을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고 한다. USKI와 KEI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공공외교 인프라다. 정치권으로 번진 이번 ‘미국서도 청와대 코드 인사’ 논란의 중심에는 구재회 USKI 소장이 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SAIS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미국의 비정부기구 프리덤하우스에서 근무했다. 2007년 6월 이후 12년째 소장으로 있다.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도 USKI와 KEI 운영과 관련해 주미 한국대사관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대미 외교가 매우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한국의 대미 공공외교 실태를 취재해 필자는 2014년 4월 KEI가 한 해 250만 달러에 달하는 한국 정부 예산을 받는데도 그 역할이 미미하다는 칼럼을 썼다.얼마 뒤 USKI도 문제가 많다는 복수의 주미 대사관 관계자의 지적을 들었다. 그 요지는 지금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돈 씀씀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이번 논란이 불거진 뒤 예산 지원 주체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밝힌 것처럼 세목도 없는 보고서 1장이 전부라는 얘기였다. 예산 대부분이 인건비로 쓰이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구 소장에 대한 불만이 컸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이 투입된 조직이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구 소장이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구소 운영을 독단적으로 한다고도 했다. 한 관계자는 “구 소장이 USKI에 방문연구원으로 초청해 인연을 맺은 분들이 한국 정계와 정부 요직에 있는 것을 뒷배삼고 있다”고 했다. 다른 이는 구 소장을 ‘언터처블(손 댈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 예산 투명성과 관련해 대외경제정책연에 3000∼5000페이지 분량으로 사업 내역을 자세히 보고했다는 USKI의 주장은 뭔가. 당시 들었던 얘기 등을 종합할 때 이들 대부분이 결산과 직접 관계없는 칼럼, 워싱턴 리뷰 등 간행물, 세미나 자료 등이었다는 대외경제정책연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국회 속기록에도 핵심인 예·결산 내역이 너무 소략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계획에도 없는 8만4000달러가 든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와의 세미나가 다음해 결산 때 포함돼 있어 대외경제정책연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질의하기도 했다. USKI는 이에 대해 제대로 답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정부가 한국과 미국 간 문화와 관습 차이를 간과해 논란을 키운 측면도 있다. 미국의 경우 대학 등 연구기관에 기부했을 경우 예산 집행이나 인사에 기부자가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브루킹스·헤리티지연구소 등 싱크탱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기부자가 외국 정부인 경우 그 속내를 읽고 사업 내용이나 인사를 사전 협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싱크탱크도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신뢰의 바탕인 만큼 이때도 소리 나지 않는 협의와 조율이 필수라고 한다. USKI는 독립된 싱크탱크가 아니라 대학 내 연구소라는 점에서 더욱 한국 정부의 ‘관심’을 간섭으로 받아들였을 공산이 크다. 실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고 문재인정부와도 가까운 로버트 갈루치 연구소 이사장이 ‘자율성 침해’라고 흥분한 것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USKI 설립 당시 이사회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소장의 전횡을 막고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우리 정부 잘못이다. 최초 연 4억원에서 현재 20여억원으로 지원 예산이 늘어났는데도 그동안 수수방관했다. 대외경제정책연이 자문위원회를 만든 것은 2016년이다. 이때 정관에 자문위원과 소장 등의 임기 제한, 소장 임명 시 사전 협의 등의 규정을 넣으려 하자 구 소장 등이 거부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악화된 데는 양국 간 문화 차이를 경시하고 거칠게 일을 처리한 정부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구 소장이 보수 성향이어서 정부가 집요하게 퇴진시키려 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박근혜정부 때인 2014년 초에 이미 USKI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국회 정무위 의원이었던 김기식 현 금감원장이 연구소의 예산 불투명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2014년 11월 이전이다. 구 소장에 대한 누적된 불신을 이번 사태의 주요한 요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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