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노석철] 시진핑, 개혁·개방한다는데 기사의 사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시 주석이 10일 보아오포럼 연설에서 자동차 관세 인하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을 약속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낭떠러지 앞에서 서로 급히 멈춰 선 모양새다. 먼저 손을 내민 시 주석은 “개방은 진보를 가져오고 폐쇄하면 낙후된다”며 개혁·개방의 전도사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마침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열린 보아오포럼은 시 주석이 스스로를 홍보하는 좋은 무대가 됐다. 이틀 전까지 “항미원조(한국전쟁 참전) 때의 의지로 미국에 맞서야 한다”던 관영 언론들은 태도를 확 바꿨다. 시 주석을 ‘인류 번영의 전도사’로 치켜세우며 개방 조치가 미국의 압박이 아니라 자의적인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방 조치의 내용이나 시기로 볼 때 시 주석이 미국의 위력에 눌려 내놓은 것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이 아직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미국과 ‘맞장’을 뜨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무역전쟁 외에도 미국은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5∼6월쯤 정상회담을 갖는다. 중국으로서는 혈맹인 북한이 중국을 제치고 미국과 너무 긴밀해지면 동북쪽에 구멍이 뚫리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또 대만여행법 시행과 잠수함 기술의 대만 이전까지 거론하며 중국을 협공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동남쪽은 모두 미국에 포위된 셈이다. 최근 중국이 러시아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러시아까지 미국 편이 되면 중국은 사방이 막혀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무역전쟁까지 벌이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시 주석의 약속대로 시장 개방 조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획기적인 변화다. 시 주석이 자동차 업종에서 외자 투자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중대한 조치’라며 반색했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자신들이 지분 100%를 갖는 자동차 공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외자 지분 제한 때문에 난항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개방 조치가 기존에 거론됐던 재탕 수준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상징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국이 내놓은 선물 보따리도 그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 25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투자·무역 협정을 체결했지만 미국 언론은 대부분의 합의가 기존에 나온 것이거나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시 주석의 이번 약속도 양보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고 중국은 실리를 챙기려는 전략일 수 있다.

특히 아직까지 사드(THAAD) 갈등 여파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시 주석의 개혁·개방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현재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여전히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삼성SDI, LG화학 등 한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은 2016년 12월 말 이후 보조금 명단에서 빠져 있다. 지난달 시 주석 특사로 방한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조만간 구체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으나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총 3조원 넘게 투입해 건설 중인 ‘선양 롯데월드’ 공사도 2016년 말부터 중단돼 있다. 한국행 단체관광 재개 역시 계속 ‘해빙’이란 말만 떠돌 뿐이다. 한국에 대한 차별 때문에 “중국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베트남으로 떠나는 한국인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이 대외 개방을 한다고 해도 이런 식의 규제 수단으로 외국 기업들을 옭아매는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을 제외한 만만한 나라들에는 의미 없는 개혁·개방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