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모녀 죽음이 남긴 것] 자살 인한 ‘심리적 난민’ 年 13만명… 고위험 관리 의무화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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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상>‘24시간 핫라인’ 내실화해야
<중> 이웃 관심이 사각지대 줄인다
<하>자살자 유가족 돌봄 확대해야


자살자 매년 1만여명 발생… 유가족 6만5000명씩 늘어
올해부터 지원 강화됐지만 편견 의식해 도움 요청 꺼려
사별 기간·개인 특성 따른 맞춤형 지원 마련도 절실


광주에 사는 A씨(49)는 2015년 4월 남편(당시 44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고2 딸과 중2 아들을 남겨놓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남편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아내 몫으로 남았다. 전업주부였던 A씨는 충격과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일자리를 구하고 아이들 학비를 걱정해야 할 현실에 직면했다.

위기가구 지원을 받기 위해 동 주민센터 문을 두드렸지만 문턱이 높았다. “아주 가난하고 곧 정신줄 놓을 상황이 아니면 한부모 가정이 됐다고 해서 도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긴급지원 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A씨를 더욱 힘들게 한 점은 세상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가족끼리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생기냐”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오죽하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가려 했겠느냐”고 11일 말했다.

그가 지방자치단체의 자살 유가족 사례 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심리상담과 치료를 지원 받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렸다. 지난해 5월에서야 광주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결됐고 센터가 운영하는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남편의 자살 이후 어렵게 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충북 증평의 모녀도 A씨처럼 자살 유가족이었다. 역시 지원 시스템은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자살 유가족(좁게는 가족, 넓게는 친구·동료 등 포함)은 자살 고위험군이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자살자가 남편인 경우 16배, 아내인 경우 46배나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 친구를 잃은 경우 자살생각 위험은 약 3.7배, 지인을 잃은 경우 약 2.2배 높아지는 걸로 분석됐다.

2016년 자살로 숨진 1만3092명을 기준으로 국내 자살 유가족 수를 추산하면 매년 최소 6만5000명(가족에 한정), 최대 13만명(지인 포함)이 자살 고위험군이 되는 셈이다. 지난 10년간 자살 사망자 수가 14만944명임을 고려하면 최소 70만명 넘는 유가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지난해 전국 (기초·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 243곳에 등록돼 사례 관리를 받은 실제 인원은 923명에 불과했다. 자살로 인한 ‘심리적 난민’ 가운데 사회 안전망 테두리에 들어온 이들이 연간 1000명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그간 자살 유가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적 관심은 적었다. 대부분 개인적 일로 치부됐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에 자살 유가족 지원 강화 내용이 포함됐지만 본격적으로 실행을 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했다.

증평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허점이 드러난 자살 유가족 관리 및 지원 정책은 개선과 보완이 시급하다. 먼저 자살 유가족 지원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여 관련 기관이 조기 개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살 유가족은 사회적 편견 등으로 속사정을 주변에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꺼린다. 유가족과 공적으로 제일 먼저 접촉하는 경찰이나 119구급대원, 사망신고를 받는 읍면동 주민센터 직원 등이 적극 나서 지자체 복지 사각지대 발굴팀(찾아가는 복지서비스팀)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혹은 자살예방센터)로 연계되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 정보보호 문제 때문에 경찰이나 지자체가 유가족 정보를 관련 기관에 전달하는 데는 장벽이 있을 수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이 함부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관련 정보가 담긴 팸플릿을 유가족에게 안내해 적극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 후 기관으로 연결하도록 해야 한다. 자살예방법에 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2013년부터 경찰이 자살 유가족을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국가 차원의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2016년 경찰청에 협력을 요청했으나 업무과다 등을 이유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자살예방 게이트 키퍼(생명지킴이)를 양성해 자살 유가족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방안도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전국에 게이트키퍼 10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했는데 주민 사정을 잘 아는 이·통장이나 부녀회장, 아파트경비원 등을 우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자살 유가족의 사별(死別) 경과 기간이나 개인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통합 돌봄 지원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이 2016년 수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변화로 전문기관(병·의원 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욕구(78.3%)가 가장 강했다. 이런 필요성은 자살을 목격한 뒤 3년이 넘도록 지속됐다.

자살 유가족이 실제 이용한 지원 서비스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유가족 모임(72.2%)이었다. 현재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유가족 자조모임은 37개뿐이다. 전체 자살 유가족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인력 부족으로 연간 100건 안팎에 머물고 있는 자살 유가족의 심리 부검도 확대해야 한다. 40∼50명에 불과한 심리부검 전문가를 크게 늘려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고루 배치할 필요가 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유가족은 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법적·행정적 문제로 인한 고통을 복합적으로 받는 만큼 자살유가족 종합지원센터 설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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