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닦달당하는 페이스북의 닦달

[시온의 소리] 닦달당하는 페이스북의 닦달 기사의 사진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10∼11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사태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명의 정보 유출 건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서였다. 이용자 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페이스북 계정 탈퇴 운동, 대형 기업들의 광고 중단, 청문회장 바깥에서의 시위와 항의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청문회는 진행됐다.

상원 청문회는 저커버그에게 유리하게 끝났다. 상원의원들의 질문은 페이스북 사용이나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해 무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페이스북 주가는 4.5%나 올랐다.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하원에서 저커버그는 “큰 실수를 했다”며 거듭 사과했으나 여러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거나 얼버무렸다.

청문회 초점은 정보 유출과 정치적 악용에 관한 내용에 있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놓쳐선 안 된다. 개인정보 유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페이스북이 인류의 삶을 근원적으로 바꿔 버렸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는 과학기술과 관련돼 있다. 기술은 계속해서 더 빠른 것, 더 편한 것, 더 복잡한 것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하이데거는 이를 몰아세운다는 뜻이 담긴 ‘닦달(Gestell)’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소모품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간은 기술문명이 확장되는 과정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기술 발전의 재료가 되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욕구를 넓혀갈 것을 강요당한다. 이 같은 악순환 속에서 인간은 결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은 역으로 삶을 지배당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를 훑어보지 않으면 불안에 휩싸인다. 우리의 존재감은 타인이 누르는 ‘좋아요’ 횟수에 따라 확인된다. 페이스북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자신 역시 글이나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현대인의 삶을 ‘강철로 된 거주지(ein stahlhartes Geh몑use)’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했다. 강철처럼 비인격적이고 차가운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개인은 인간적이며 자율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는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번 페이스북 사태의 표면적 문제는 개인 정보가 데이터 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를 통해 유출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이 페이스북으로 상징되는 기술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했다는 데 있다. 편리해지기 위해 선택한 기술은 기업과 정치인들이 광고 수익을 내고 정치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됐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목표가 스스로를 강화해 지배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을 두고 ‘의지에 대한 의지’라고 불렀다. 또 기술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지배에 대한 의지라는 마력(魔力)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봤다. 어쩌면 이번 페이스북 사태는 이 같은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인가.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끊은 지 4년이 돼 간다. 한때 ‘페북 폐인’ 비슷한 삶을 살 때를 돌이켜보면 하이데거나 베버가 지적한 기술 사회의 위기가 과장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단순히 과학기술을 거부하자는 태도는 안일하고 순진하다.

기술 사회가 지닌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 위험을 막기 위해 과학기술과의 주종 관계를 정립하는 게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신다. 참된 안식은 다른 우상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이 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서로 얼굴을 맞댈 때 비로소 초대교회 같은 공동체(행 2:46)가 시작될 수 있다.

이번 페이스북 사태를 보며 기술의 부품이 된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 더욱 그리워진다.

우병훈(고신대 신학과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