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앞둔 장애인 목사 이야기] 이동규 목사, 뇌졸중 넘어 뇌졸중 장애인 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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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목사(왼쪽)가 12일 서울 구로구 뇌졸중장애인선교회 사무실에서 아내 이정미 사모와 손을 맞잡고 있다.
30대 후반의 진모씨는 3년 전 임신 8개월 만에 뇌출혈이 찾아왔다. 배가 불러와 약을 쓰거나 똑바로 서서 걷는 등의 재활이 어려웠다.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걸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태어난 딸을 두 손으로 안아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이동규(62) 목사를 만났다. 뇌졸중장애인선교회(이사장 인명진 목사) 상임이사인 그 역시 뇌졸중 장애인으로 오른팔을 쓰지 못하고 실어증을 겪고 있었다. 재활이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았을 때 이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며 진씨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이 목사는 진씨를 위해 3년째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다. 서울 구로구 선교회에서 충남 아산에 있는 진씨 집까지 두 달에 한 번 이상 심방을 빼놓지 않았다. 운전은 아내 이정미(60) 사모가 맡는다. 이 목사의 정성 어린 사역에 진씨는 요즘 설교 방송을 찾아볼 정도로 하나님에 푹 빠져 있다. 수술 이후 머리에 난 함몰 자국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하나님이 딸과 남편, 그리고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리치료사였던 신모(56)씨도 5년 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사시가 찾아왔고 몸 왼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님을 몰랐던 그를 이 목사는 3년째 꾸준히 찾아갔다. 어느 날 신씨 입에서 “아멘”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중풍 병자를 고치신 예수, 평생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산 바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신씨도 방긋 웃는다.

12일 서울 구로구 선교회 사무실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그는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신학 석사를 졸업한 ‘엘리트’ 목회자였다. 2000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친구교회 담임을 맡아 성도 수를 29명에서 105명까지 늘렸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도회와 성경공부를 이끌었다. 지칠 줄 모르고 사역에 매진했다.

2004년 성탄절 이튿날이었다. 주일이었던 그날 오후 예배를 기다리던 이 목사가 아내를 향해 갑자기 “병원”이라며 입 모양으로 외쳤다. 가까운 병원으로 부축해 가는 이 사모의 어깨 쪽으로 이 목사의 몸이 점차 기울어졌다. 머리 속 피를 제거하고 병원 세 곳을 거치며 재활했다.

이 목사는 1년 뒤 교회 강단으로 돌아왔다. 목회를 8년 더 했지만 교우는 조금씩 줄어갔다. 많은 성도를 섬기기에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떠나지 말라며 눈물 흘리는 성도들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나온 그는 자신과 같은 뇌졸중 장애인을 직접 찾아 섬기는 목사가 됐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100명 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그는 눈에 띄는 차도가 없을 때도 실망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받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늘 밝은 미소로 “희망을 품자”고 말하는 이유는 이 성경 구절 덕분이다. “내가 너희를 선택했고, 너희를 저버리지 않았다(사 41:9·쉬운성경).

글·사진=김동우 기자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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