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김나래] 통일, 어쩌면 마음의 문제 기사의 사진
1992년 발매된 그룹 ‘공일오비(O15B)’ 앨범에 ‘적(敵) 녹색인생’이란 곡이 수록돼 있다. 아카펠라 곡인데 가사에 환경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상쾌한 아침엔 샴푸로 머리 감고/거울 앞에선 무스로 단장을 하고/하얀 연기를 품는 자가용 타고/친숙해진 소음 속에 나서지/우리가 내던진 많은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이제는 더 이상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잖아.’

그해부터였던가. ‘내일은 늦으리’라는 환경보전을 위한 콘서트도 열렸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해철의 넥스트, 이승환, 신승훈 등 요샛말로 ‘이거 실화냐’ 할 정도의 라인업이었다.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반향이 컸다. 고교생이던 나는 샴푸 등 합성세제가 환경을 해친다며 친구들과 비누로 머리 감고 식초로 헹구기에 도전했다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꼭 그때부터였다고 할 순 없지만, 지구촌 구성원의 일원으로 환경보호에 대한 의무감을 품게 됐던 것 같다.

살림을 시작한 뒤로 쓰레기 재활용을 열심히 했다. 유한한 자원을 아껴 쓰고,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당위가 컸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이자 배려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한참 뒤였다. 2004년 북한의 용천역 폭발사고 취재차 중국 단둥에 다녀오면서다. 접경지역에서 만난 취재원의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북한 아이들은 비가 오면 학교에 못 가요. 창틀에 유리창이 없어요. 유리는 비싸서 못 쓰고, 비닐이라도 있으면 붙여놓을 텐데 그것도 없어요.”

출장에서 돌아와 장을 본 뒤 불필요한 비닐 포장이 그토록 많음에 놀랐다. 비닐봉지를 볼 때마다 그게 없어 학교를 못 간다는 북한 아이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 아낀다고 당장 그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건 아님을 알면서도 비닐에 이물질이 묻으면 닦아내고, 물기를 말린 뒤 반듯하게 접어 내놨다. 비닐봉지에 지금 이것이 필요한데도 쓰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 쓰여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되지 않을까. 비단 비닐봉지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쉽게 쓰고 버리는 동안 누군가는 내가 누리는 잠깐의 편안함 이상의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 뒤에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존재함을 너무 당연히 여기며 살고 있다.

최근 평양에서 열린 2018 남북 합동공연 ‘봄이 온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한반도에 봄이 와서 통일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북한 아이들이 그동안 남쪽에서 우리가 살았던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혹시 여기에서 우리가 풍족하게 누리는 동안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배움의 기회, 가족의 건강, 인간적인 삶 등을 떠올리며 우리를 원망하진 않을까. 그렇게 다치고 찢어진 마음이 통일 한반도에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남북통일이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와 정치공학이 크게 작동하는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갈라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라는 점을 작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어서 더 유명해진,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미국의 기독교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정치에서 간과된 마음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연민을 토대로 마음의 습관을 키워나갈 것을 강조하면서 교육과 종교에 주목한다. 특히 낯선 이들을 사랑으로 맞이하는 기독교의 ‘환대’를 역설하면서 성경은 ‘환대하는 마음의 습관’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가르쳐준다고 적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도 어느 강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망명하기 전 생각했던 한국과 실제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많은 한국인들이 통일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갖고 ‘북한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게 사는데 어떻게 하면 그들도 행복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걸 봤다”고 했다. 어쩌면 통일은, 북한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 마음에 먼저 봄이 오길 기다린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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