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부터 악당까지… 웹툰 대세는 ‘강한 여성’ 캐릭터 기사의 사진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전형성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이 여성 캐릭터에 다양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의 탑’ 공주 유리 자하드, ‘하이브’의 여왕 성지은, ‘나노리스트’의 최강 안드로이드 병기 나노, ‘가담항설’의 여자 장사 홍화. 네이버 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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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과 정신력서 남성 압도… 작품의 재미 한층 끌어올려
여성들 다양한 욕망 표출… 사회적 한계와 편견 깨뜨려
‘원 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로 다른 대중문화에 긍정적 영향


인공지능(AI)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아가는 가상의 미래. 정부와 대기업이 결탁해 살상용 안드로이드를 만들었고,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대기업 소속 안드로이드가 인간 지배를 꿈꾼다.

네이버 인기 웹툰 ‘나노리스트’의 기본 줄거리다. 이 만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최강의 무기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나노, 나노를 만든 과학자와 그 동생, 대기업 회장, 견고하게 제작된 안드로이드들이다. 이 웹툰을 영화로 만든다면 누굴 캐스팅할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보자. 자연스레 남자 주인공 후보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 주요 인물 중 남자는 3명뿐이다. 주인공인 나노, 천재 과학자, 대기업 회장을 떠올렸다면 3분의 1만 맞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나노 수준 크기로 분해하는 힘을 가진 살상 안드로이드 나노는 여자다. 나노를 만든 천재 과학자 안도화도 여자다. 대기업 회장 오정규만 남자다. 주요 인물 중 남성은 나노의 보호를 받는 안도화의 남동생 도진, 딸과 함께 도진 일행을 돕는 연구원 이팝까지 셋뿐이다.

‘나노리스트’처럼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 설정으로 극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만화들이 많아졌다. 요즘 만화들은 영웅부터 악당까지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 작품에 활력을 더하고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네이버 인기 웹툰 ‘하이브’에도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인류를 구원할 여왕, 복면을 한 여성 궁수, 근육질 수녀, 무자비한 여성 용병 등이 극을 이끈다. 판타지 장르의 스테디셀러인 ‘신의 탑’(네이버)에도 강한 여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신의 탑’ 세계관에서 ‘자하드의 공주’로 분류되는 강한 여자들은 체력과 정신력에서 남자들을 압도한다.

‘가담항설’(네이버)에서는 ‘여자 장사’가 주인공 중 하나다. “힘이 장사다”라고 할 때 그 ‘장사’로, 바위 정도는 거뜬히 들어올리는 힘 센 여자가 주인공이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냄새를 보는 소녀’(케이툰)의 여주인공도 국제적 조직폭력배에 맞서는 기개를 보여준다. 낯설지만 통쾌하다.

나쁜 여자들이 잔뜩 나오는 만화도 있다. 악녀들의 대결을 그린 ‘마스크걸’(네이버)의 매미 작가와 희새 작가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전부 여자다 보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나쁜 여자들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달리 만화 장르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창조되고 있는 것은 웹툰계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주류 미디어인 영화와 드라마 분야에서는 전형성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고속 성장 중인 웹툰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독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는 것만으로도 반전이 가능해진다. ‘캔디’를 답습해서는 독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창조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도 새로운 캐릭터 구축을 가능케 한다.

만화 속 여성 캐릭터의 다변화는 다른 대중문화 장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웹툰이 ‘원 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로 영화 뮤지컬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는 “만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여성에게 내재된 다양한 욕망이 표현되고 있다. 만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한계와 편견을 깨고 여성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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