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달달 프렌치 키스?… HPV 옮아 입속 암 부를 수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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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음주 감소로 두경부암 줄었지만 HPV 감염에 의한 사례는 되레 늘어
전체 환자의 20∼30% HPV 원인 추정… 구인두·편도·설근부암 HPV 관련성 높아
HPV 양성 두경부암 대개 55∼65세때 발병
첫 성경험 빠를수록 구인두암 위험 높고 배우자 구강 HPV 감염 땐 감염 위험 10배
조기 발견 어렵지만 치료 예후는 좋아… 실태 파악 필요 예방 백신 접종도 검토해야


A씨(44)는 4년 전 목 안에 뭔가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가 편도암 진단을 받았다. 구강 내 목젖의 양쪽에 있는 편도조직(구개편도)에 생기는 암으로 두경부암의 한 유형이다.

업무상 담배를 조금씩 피우긴 했지만 워낙 젊고 건강했기에 암은 충격적이었다. 림프절까지 암이 퍼져 3기로 판명됐다. 그런데 편도 조직검사 결과 흔히 여성에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걸로 알려진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 16형’ 감염이 확인됐다. 의학적으론 HPV 양성(+) 편도암으로 불린다. A씨는 생소한 암이 자신의 입안에 생긴 것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놀랐다. 암과 림프절을 떼어내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다행히 암은 깨끗이 사라진 상태다. 그래도 완치 판정이 가능한 5년이 넘지 않아 정기 검진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평생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는 B씨(62·여)는 7년 전 ‘편도 비대’가 의심돼 편도절제 수술을 받다가 뜬금없이 3기 편도암이 발견됐다. B씨 역시 조직검사에서 HPV 16형 양성으로 나왔다.

A, B씨 치료를 맡았던 국립암센터 두경부종양클리닉 정유석 전문의는 16일 “HPV가 원인인 암은 성생활 패턴 등 사생활 관련 부분이 많아 정확한 감염 경로나 발암 원인을 밝히는 게 쉽지 않고 환자나 보호자(특히 배우자)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이런 HPV 감염에 의한 두경부암이 점차 늘고 있다. 정 전문의는 “미국 등 서양국가처럼 극단적 증가세는 아니지만 한국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면서 “흡연과 심한 음주가 중요한 발생 원인으로 알려져 왔던 두경부암 분야에서도 주로 성 접촉으로 전파되는 HPV가 주요 관심 사항이 됐다”고 했다.

일선 이비인후과에선 HPV 감염과 두경부암의 상관성을 묻고 상담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한 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아내가 HPV에 감염돼 남편이 편도암 검사를 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남편의 생식기에서 HPV 감염이 발견돼 구강쪽 암 검사를 받으러 오는 아내도 간혹 있다”고 귀띔했다.

HPV도 두경부암 일으킨다

두경부는 목과 머리(두부)에서 뇌와 척추, 눈을 제외한 모든 기관을 말한다. 입천장 잇몸 혀 혀뿌리 목구멍 편도 후두 침샘 코주변뼈 등 여러 부위에 생긴 암이 두경부암이다. 후두암 구강암 인두암(구인두암 비인두암 하인두암) 편도암 비강암 설암 침샘암 등이 해당된다. 갑상샘암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된다. 한 해 신규 발생 암 환자 20만여명 가운데 갑상샘암을 제외한 두경부암은 5000명 안팎이다.

두경부암의 대표적 위험 요인은 오랜 흡연과 음주다. 아무래도 구강 속 여러 기관의 점막이 이런 발암원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두경부암 발병 확률이 12∼15배 높다. 음주 역시 그 자체로 해롭지만 흡연의 해악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안 좋다. 음주와 흡연을 같이 하면 두경부암 발병 위험은 20∼30배 커지는 걸로 알려졌다. 중앙대병원 두경부종양클리닉 이세영 교수는 “그나마 흡연과 음주의 감소 추세에 따라 전체적인 두경부암 발생은 조금씩 줄고 있는데 HPV 감염에 의한 두경부암 빈도는 오히려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체 두경부암의 70∼80%는 흡연과 음주, 20∼30%가 HPV 감염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30년 전의 문란한 성생활이 요즘의 HPV 양성 두경부암 증가 원인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HPV는 지금까지 200종 이상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 12종(16, 18, 31, 33, 35, 39, 45, 51, 52, 56, 58, 59형)은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해 1급 발암원으로 규정됐다. 성 경험이 있는 성인 남녀의 절반 정도에서 평생 한 번 이상 감염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자궁경부암 질암 항문암 음경암은 물론 생식기사마귀 등 일부 성병을 일으킨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일부 두경부암 조직에서 HPV가 발견됐다는 연구 보고가 속속 나왔다. HPV 감염과 관련성 높은 유형은 구인두암 편도암 설근부암(혀뿌리암)이다.

2015년 미국암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구인두암의 60%, 편도암의 70%, 설근부암의 60%에서 HPV 16, 18형 감염이 확인됐다. 후두암과 하인두암은 HPV 감염과 상관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세영 교수는 “특히 편도는 점막 표면에 주름이 있어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HPV가 감염되기에 가장 좋은 부위”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에선 과거 가장 흔한 HPV 관련 암인 자궁경부암이 조기 검진의 보급, 위생 환경 개선에 힘입어 감소하고 있다. 반면 HPV 양성 구인두암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돼 일각에선 향후 ‘판데믹’(Pandemic·유행성 전염병)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미국에서는 2020년쯤 HPV와 관련된 가장 흔한 암으로 두경부암이 자궁경부암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프렌치 키스로도 HPV 전파

국내에선 HPV 양성 두경부암 발생률의 경우 정부의 암등록 통계에서 별도로 구분해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발생 현황을 알 순 없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발생 빈도에 대한 학계 차원의 역학조사나 유병률 연구도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HPV 감염과 관련성 높은 것으로 알려진 두경부암의 유형이 늘고 있음은 통계로 확인된다. 2015년 기준 신규 발생 편도암은 426명으로 1999년(137명) 보다 3.1배, 구인두암은 1.8배(57→101명)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편도암 진료 환자는 2679명으로 2013년(2085명)보다 28.4% 늘었다. 구인두암은 27.8%(736명→941명) 증가했다. 정유석 전문의는 “국내 구인두암 발생률을 자체 조사해 봤더니 1999∼2014년 매년 3.2%씩 늘었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그 원인을 HPV의 전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HPV 양성 두경부암의 경우 HPV 음성(-)보다 발병 연령이 5세 정도 젊은 편이다. 대개 55∼65세에 발병하고 최소 발병 연령은 40대 중후반이다. 20대 때 성접촉 이후 HPV에 지속 노출되더라도 암이 되기까지는 보통 20∼30년 걸리기 때문이다. 남성 환자가 3배가량 많다. 건전치 못한 성생활과 마리화나 경험 등이 위험 요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가 구인두암 환자 100명과 정상인 200명을 비교 연구해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질 성관계 파트너가 26명 이상일 땐 구인두암 위험이 3.1배, 오럴섹스(구강성교) 파트너가 6명을 넘으면 3.4배 증가하는 걸로 나타났다. 또 HPV 16형의 구강 내 감염 시 14.6배, 혈액에 HPV 16형 단백질(L1)을 갖고 있고 흡연·음주 시 구인두암 위험이 14.6배 높아졌다. HPV 감염 상태에서 흡연과 음주까지 하면 면역력을 더 떨어뜨려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첫 성경험 연령이 빠를수록 구인두암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HPV 감염은 구강대 구강으로도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06년 결혼 커플을 대상으로 한 핀란드 연구를 보면 배우자가 구강 HPV 감염이 된 경우 상대방의 구강 HPV 감염 가능성은 10배 증가했다. 2009년 미국 연구진이 구인두암 환자 332명과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대학생에서 구강 HPV 감염은 최근 성 파트너 수가 6명 이상일 경우 10.8배, 이른바 ‘프렌치 키스’(open mouth kissing·입 벌린 상태의 키스) 파트너 수가 6명 이상이면 8.4배 증가했다. 구강성교 경험이 없는 59명의 환자에서는 평생 프렌치 키스 파트너 수가 10명 이상이거나 최근 프렌치 키스 파트너 수가 5명 이상인 경우 구강 HPV 감염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문의는 “구강 내 HPV 감염이 구인두암 발병에 핵심 과정인데도 일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면서 “성 개방 풍조로 HPV 감염이 늘고 있는 추세여서 정확한 실태 파악, 특히 구강 내 HPV 감염률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HPV 양성 두경부암의 경우 자궁경부암처럼 전암 병변(세포 변형 등)이 없다. 따라서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때문에 목 이물감 등 증상이 느껴지면 대부분 림프절 전이까지 진행된 3∼4기 단계에서 발견된다. 그나마 HPV 양성 두경부암의 예후는 좋은 편이다. 3기 이상에서 발견되더라도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통해 70% 이상 완치된다.

예방을 위해선 안전한 성생활이 중요하다. 정 전문의는 “최근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해 널리 권장되는 HPV 백신이 편도암이나 구인두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한 효과 연구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12∼13세 소녀에게 무료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소년에게는 권고되지 않는다”면서 “구인두암 예방 백신 도입 논의와 비용 효과성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년에 대한 무료 백신 접종 프로그램은 미국, 호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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