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정치에 관해 설교하기 전에

[시온의 소리]  정치에 관해 설교하기 전에 기사의 사진
“저런 놈들은 아오지 탄광에 보내서 고생을 쫌 해봐야 돼.” 오늘도 어김없이 담임목사는 강대상을 두들기며 노기 띤 목소리와 조롱의 미소를 보내며 데모하는 학생들을 질책한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전경 여럿이 다쳤기 때문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거리 하는 철부지들은 허리가 휠 것 같은 노동을 해 봐야 정신 차린다는 것이다.

몇 주 후, 대학생이 죽었다. 턱 치니 억 하고 죽더란다. 신문과 방송에서 대학생이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정권이 야당 지도자를 사찰하고 온갖 불법을 자행해도 그 담임목사는 어떤 설교도 하지 않는다. 그쯤 되면, 생때같은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헤아리거나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왜 사람을 때리고 가두냐는 한마디쯤 할 법한데 일언반구도 없다.

사회 참여를 고민하던 대학생인 나에게 목사님은 목회자의 설교는 최소한 기계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대의와 구호의 정당성과 별개로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것이 부당하다면,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과 학생을 고문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악하지 않은가. 경중을 가리지 않더라도 이것도 설교했다면 저것도 설교해야지, 어느 하나만 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둘 다 하든지, 둘 다 하지 말든지.

기계적 중립과 함께 청중을 고려해야 한다. 교인들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은 다양하다. 정당 지지율을 감안한다면 기독교인의 성향도 엇비슷하게 나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민주당과 정의당, 녹색당 지지자들이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다. 그럼에도 특정 정당과 후보를 노골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지지하거나, 교회를 방문했다고 인사하고 박수치게 하면 교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지친 몸을 이끌고 온 성도들 아닌가.

내가 정치에 관련한 설교를 들을 때마다 갖는 생각은 ‘저건, ○○일보의 사설 논조랑 너무 같은 걸’이다. 성경으로 신문을 해석하는 것인지, 신문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성경과 특정 신문이 저렇게 동일시될 수 있는지. 때문에 나는 목회자들은 적어도 논조가 확연히 다른 신문을 동시에 구독할 것을 권한다. 진보적인 신문 하나, 보수적인 신문 하나 말이다. 1면 톱기사 선정부터 다르고,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제목을 뽑는 것도 뉘앙스도 묘하게 갈린다. 사진의 크기나 배치, 각도도 같지 않다.

‘한 손에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칼 바르트의 명언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렇게 수정돼야 한다. ‘한 손에 성서를, 다른 한 손에 신문 두 개를’ 혹은 ‘한 손에 성서를, 다른 한 손에 책을’이라고 말이다. 아니, 그냥 차라리 ‘양손에 성서를’.

기독교와 특정한 정치 단체의 동일시는 위험하다. 이용되기 십상일뿐더러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아이 친구 엄마가 아내에게 그랬단다. 자기 회사 사장님이 장로인데, 직원회의 할 때 주일설교를 판박이로 하신단다. 그 생각과 다른 아내의 말을 듣기 전까지 교회는 다 그런 줄 알았단다.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 비판과 감옥에 갇힌 두 전직 대통령 지지가 기독교인가.

미국 예일대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는 그의 책 ‘배제와 포용’에서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거리두기와 소속되기’로 정의한 바 있다. 교회가 사회와의 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게토화하고 자기 의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사회의 일부로 완전히 편입되고 동일시되면 무능하거나 최악의 경우 반목과 불화의 당사자로 전락한다. 정치에 참여하되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볼프에 따르면 해결책은 내가 누구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무릇 충성은 배타적이다. 오직 한 분에게만 충성을 바치기에 다른 것은 상대화할 줄 안다. 하나님 외에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교회는 나와 다른 타자와 이념을 수용하는 넉넉한 공간을 품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 전적인 충성을 바치면 내 안의 거짓과 위선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게 된다.

6월 13일 지방선거가 열린다. 정치의 계절에 목회자의 설교는 그가 섬기는 주인이 누구인지, 그는 누구의 종인지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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