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승욱] 매크로가 마냥 신기한 세대 기사의 사진
며칠 전부터 매크로(macro)라는 단어를 모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에 달린 문재인정부 비판 기사의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민주당 당원들이 구속된 코미디 같은 사건 때문이다. 핵심 고리로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김경수 의원이 지목되면서 사건은 고발장을 제출한 민주당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번지는 중이다. 사실이라면 정권의 명운이 걸린 심각한 일이다. 사실이 아니어도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 전개에 벌써부터 손에 땀이 날 지경이다.

이번 사건은 매우 특이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브로커의 이권개입 사건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등장한다. 세대의 경계점에 자리를 깔고 앉아 구세대와 신세대를 넘나든 흔적이 역력하다. 구속된 피의자는 실명 대신 드루킹이라는 아이디로 불린다.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 나오는 마법사 드루이드에서 따왔다고 한다. 드루킹은 온라인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현실 정치를 해설하며 파워 블로거로 떠올라 대선 기간 중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구세대가 사는 오프라인 세계에는 여론을 주도하는 네티즌의 힘을 과시했고 오프라인에 실존하는 권력층과의 관계를 매개로 다시 온라인에 영향력을 넓혔다.

드루킹의 손에는 매크로라는 무기가 있었다. 매크로의 사전적 의미는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묶은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초반 신문사 인터넷 뉴스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키보드의 F5 키를 테이프로 고정시키거나 종이를 끼워 기사 클릭수를 올리는 비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이 매크로를 낳았다. 자동으로 F5가 입력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구차하게 키보드에 테이프를 붙일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때를 즈음해 온라인게임에서는 특정한 키를 연속적으로 누르거나, 게임 속에서 특정 지점을 찾아 마우스를 클릭토록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온갖 아이템을 싹쓸이하며 게임의 왕으로 군림했다.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탈이라도 현실에 구현되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출발은 게임 아이템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 시장이 열렸다. 고성능 PC를 구입해 밤새 매크로를 돌리면 다음날 적지 않은 현금이 떨어졌다. 아이템 장사꾼이 극성을 부리자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들은 보안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응했다. 항생제에 면역력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하듯 보안 프로그램과의 전쟁 속에서 매크로는 진화를 거듭했다. 게임 프로그램 자체를 변형시키는 핵(hack)이 등장한 게 벌써 10년 전이다. 한동안 이 세계는 핵매크로가 주름잡았다. 그러던 중 기업 이미지, 상품 홍보 등 몇몇 분야에서 매크로를 이용해 여론에 손을 대는 사람이 나타났다. 댓글부대를 고용해 상품평을 올리거나 일일이 댓글을 다는 방식은 케케묵은 수법에 불과했다. 특정 댓글을 찾아 ‘좋아요’를 클릭토록 하는 단순한 버전의 매크로라도 적절히 사용하면 파급력은 엄청났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매크로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다. 낮은 수준의 매크로는 당장이라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지만 보안 프로그램이 강력해 뒷감당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기는 쉬워도 혹시 걸렸을 때를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평생 앞 세대와 싸우며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자부하는 386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다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는 방식이 다른데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신세계가 열렸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최소한 선거를 앞두고 희한한 기술을 쓴다며 묵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이 핵폭탄이 될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결론이 나기까지 10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스타크래프트 세상에 진입하지 못했고, 노래방에서 랩을 하지 못하는 세대라는 말은 이제 농담이 아니다. 최소한 겸손해야 한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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