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충성 맹세 기사의 사진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 IT 붐이 한창이던 시절 증권가에는 작전세력의 ‘충성 맹세’가 유행했다.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지라시’가 떠돌지만 이메일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은 그 시절에는 종이 지라시가 유포됐다. 물밑 정보에 목말라하는 대기업과 사정기관, 증권사 직원 등이 비밀 모임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사시미 칼을 앞에 놓고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는 낭설도 전해진다.

야쿠자는 가입할 때 고급스러운 기모노를 입고 넓은 술잔에 술을 따라 상대방과 나눠 마시는 의식을 치른다. 일본말로 술잔을 뜻하는 사카즈키 의식이다. 이때 썼던 술잔을 잃어버리면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마피아 조직 두목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알폰소 카포네다. 1925년부터 1931년까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직범죄단을 이끈 그는 왼쪽 뺨에 있는 세 줄의 흉터 때문에 스카페이스(scarface)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그는 절대 충성을 맹세한 1000여명의 조직원을 이끌며 1929년 2월 ‘성 밸런타인데이 대학살’ 등 수많은 폭력·살인사건을 배후에서 지휘했다.

17일 발간되는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회고록 ‘더 높은 충성심(A Higher Loyalty)’이 미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의 내통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 지난해 5월 해임된 코미는 책에서 트럼프를 충성심에 집착하는 마피아 보스에 비유했다. 대통령 취임 일주일 뒤 백악관 독대 만찬에서 트럼프는 계속 충성을 요구했고 코미는 “나에게서 항상 정직함을 얻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에 5건의 트윗을 쏟아내며 코미를 “더럽고 약삭빠른 인물, 역대 최악의 FBI 국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반격했다.

이 장면을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지난 18대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던 그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법무·검찰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현 정부를 비방한 댓글 조작 사건이 알고 보니 민주당원의 소행이고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선을 긋고 있지만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석열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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