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님, 레몬주스 한 잔…” 작가, 미술관서 바텐더 되다 기사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전을 찾은 관객들이 지난 13일 대만 작가 황포치가 제안한 ‘레몬와인 바’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작가가 오래 체류할 수 없는 사정 탓에 한국인이 대신 바텐더 역할을 했다. 아래 사진은 황포치 작가가 봉제공장 여공이었던 어머니를 소재로 한 설치 작품 ‘생산 라인’의 전시 모습. 최현규 기자
대만 작가 황포치 ‘레몬와인 바’ 여공이었던 어머니 꿈 실현 위해 레몬 심은 스토리 공유하려 마련
염지혜 등 8개국 작가 15명 참여… 소통 공간을 전시방 밖으로 넓혀 작가 세계 곱씹는다는 의미 있어


평소엔 휑한 전시장 앞 복도에 레몬색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오후 1시가 되자 관객들이 모여들어 바텐더가 건네는 레몬주스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곳에선 필리핀의 마크 살바투스(38), 한국의 염지혜(36) 등 8개국 15명(팀)의 젊은 작가를 초청한 아시아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전이 진행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전시를 계기로 관람객과 소통하기 위한 광폭 행보에 나섰다.

레몬와인 바는 대만작가 황포치(38)가 ‘1+1’ 전시처럼 마련한 이벤트이자 그 자체가 전시다. 가족 간 일상 대화를 소재로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온 작가가 2013년부터 진행해 온 ‘500그루 레몬나무 프로젝트’의 연장이다.

출발은 이렇다. 어느 날 봉제공장 여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에게 그가 물었다. “엄만 앞으로 뭘 하고 싶어요?” “공장 일은 지긋지긋해. 농장을 열고 싶어. 이왕이면 레몬을 심었으면 싶구나.”

작가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아 레몬나무 묘목 500그루를 샀고, 버려진 땅에 이를 심어 5년 만에 레몬을 수확했고, 주스를 만들어 펀딩 참가자에게 선물했다.

레몬와인 바 이벤트는 그런 이야기를 관객과 공유하기 위한 장이다. 개인적인 사연은 ‘500그루의 레몬나무’라는 책자에 담아 이벤트장에 내놓았다.

“미술은 그림, 조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런 체험을 제공하는 게 신선해요.”

팔순을 앞둔 어머니와 나란히 앉은 주부 장모(51·경기도 포천)씨는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이벤트 참가를 신청한 덕분에 재밌는 관람을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전이 한국 전시 역사에서 관객 참여 프로그램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존에도 관객 참여형 전시는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전시장 내부에 머물렀다. 이번엔 소통 공간이 전시장 밖으로 확대됐다. 전시장과 전시장을 잇는 복도, 쓰지 않은 숨은 공간뿐 아니라 아예 핵심 전시공간을 소통의 장소로 내놓는 과감성을 보였다. 1,2층이 확 트여 주로 대형 설치미술 작품들이 내걸렸던 ‘서울박스’ 공간도 테이블을 놓아 관람객들이 ‘전시 뒷담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플랫폼’이라 부르는 이런 공간에서 작가가 제안한 요리 교실, 1일 장터, 토론 등의 행사가 요일별로 열리고 있다. 단순히 즐기고 놀자는 게 아니다. 메인 전시에 이어지는 형식으로 열려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곱씹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황포치 작가의 메인 전시인 ‘생산라인’에는 봉제공장 여공이었던 어머니의 삶을 환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몸통은 대만인인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고, 팔은 중국 여공이 만든 국제 합작품의 셔츠도 걸렸다. 전시장 바로 앞에 마련된 레몬와인 바에서 맛보는 상큼함은 봉제 공장 여공의 신산한 삶과 대비돼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요리 교실은 인도네시아 엘리이 누비스타(35)의 영상 작품 ‘비정통요리연구’의 부대 이벤트다. 이 작품에선 ‘커리 버거’라는 요리를 두고 인도 일본 미국 등 각국 대표들이 자국 종주권을 주장하며 열린 토론을 벌인다. 결국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요리 교실 참가자들에게도 주어진 요리재료를 가지고 ‘전통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요리를 하라는 주문이 떨어진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사는 “전시를 보고 난 뒤 관객이 느낀 감상을 확장할 수 있는 추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시장에서는 떠들 수 없으니, 작품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7월 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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