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북·미 정상, 판문점서 만나야 기사의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지만 회담 장소를 둘러싼 논란은 조금 뜻밖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8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요청을 수락한 직후부터 판문점은 유력한 회담 장소 중 하나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꺼리고, 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악관이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걸 꺼린다는 얘기가 미국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장소와 겹치는 데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부각되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런 보도를 부인하거나 해명하지 않고 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미동맹 간 불신으로 비칠 수 있어서 유감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평양이나 워싱턴에서 열리지 않는다면 판문점이 최적의 장소다. 판문점은 1951년 10월 25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만나 휴전협상을 시작한 곳이며,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한 장소다. 유엔군의 주축이 미군이었기 때문에 판문점은 사실상 북·미 간 첫 협상 장소였다. 판문점이 한국 땅이라는 건 오해다. 판문점은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JSA) 안에 있다. 한국이나 북한의 영토가 아닌 중립지역이다. JSA가 남측 구역과 북측 구역으로 나뉘어 있지만 JSA 전체가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에 있다.

판문점은 한반도 정전체제가 65년간 이어지면서 남북 분단과 군사 대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판문점에는 지금도 남북한 병사들이 지척 거리에서 상대를 노려보며 경계를 서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다녀간 곳이 여기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헬기를 타고 방문을 시도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되돌아왔지만 그 역시 판문점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판문점에서 북한에 보낸 메시지는 분명했다. 도발에 대한 경고와 한·미동맹의 결속이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난다면 역대 미 대통령들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 대결을 종식하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메시지를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낼 수 있다. 또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곧바로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후속 대책을 조율하기에도 수월하다. 이런 이점이 많은 판문점을 백악관이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 같은 장소에서 열리지만, 회담 장소가 같더라도 사람이 다르면 의미가 같아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5곳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구체적인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양과 워싱턴은 각각 미국과 북한의 반대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여러 나라가 정상회담 장소를 제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한반도가 아닌 지역에서 회담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걸 시사한 것이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내 특정한 장소를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미국에 제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소를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미국과 북한이 협의해 할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북·미 정상회담을 워싱턴과 평양에서 열 수 없다면 제3국에서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몽골이나 스웨덴 등에서 열리더라도 성과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판문점을 놔두고 굳이 그런 곳을 찾아갈 일은 아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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