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음모론 기사의 사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적절치 못한 행동이 드러나자 여권 일각에서는 금융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하면 북한 또는 불순분자들이 배후라는 공식이 늘 있었다. 희한하게 얼마 있다 간첩망 타진, 재일교포 간첩 사건 같은 게 터지곤 했다. 천안함이나 세월호 사건 때의 음모론은 황당무계하다. 그래도 믿는 이들이 꾸준히 있긴 하다. 보통 사람이 음모론에 끌리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걸 단순명쾌하고 간단하게 해석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 9·11 테러 직후에 미국 정부가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왔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만든, 당시 펜타곤에 항공기가 충돌하는 컴퓨터그래픽을 보면 정말 조작됐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텍사스 석유재벌 출신의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9·11 테러와 미국·사우디 간 유착설, 대통령의 사욕 등으로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는 음모적 시각에 기반한다.

음모론이 작동하는 심리적 구조는 비슷하다. 모든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발생 배후가 서로 연결돼 있으며 틀림없이 목적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제한된 조건 아래 알려진 각각의 사실(물론 틀린 팩트일 수도 있다)들을 그저 평가하거나, 그걸 기초로 해 앞으로 일어날 일의 가능성을 예상하는 정도일 게다.

이른바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은 음모론이 확산되기에 딱 맞는 구조를 갖췄다. 여권 핵심인사들이 배후에 개입해 탈법 선거운동을 한 거대한 정치적 사건인가, 아니면 파워블로거를 지향하며 과시욕에 들뜬 몇몇의 장난질인가. 드루킹의 행적과 운영 자금 출처, 선관위 고발 후 검찰 무혐의 처분 등 몇 개 대목을 파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사건의 실체 정도는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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